메뉴 건너뛰기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가톨릭대학교,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백민정
발행연도
저작권
가톨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10

표지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
정보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세요!
본 논문은 정묘・병자호란기 전개된 척화-주화 논쟁의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면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이 견지한 전쟁관과 정치사상을 분석하려는 것이다. 척화-주화 논쟁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명분과 실리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있었다. 척화와 주화의 대립을 주자학과 탈주자학의 구도로 분석하는 연구도 비슷한 관점을 보인다. 최근 연구에는 척화론이 명분에 치우친 관념적 주장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세 판단에서 나온 합리적 태도라고 본 평가도 있다. 한편 대명의리가 조선 국내의 통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 연구, 당시 사대부들에게 대명의리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으며 주화론자들 또한 본질적으로 척화론자였다고 평가한 연구도 존재한다. 필자는 이런 선행연구들의 견해를 분석하고 일부 동의하면서 척화-주화 논쟁의 흐름과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강화되었던 위 논쟁은 표면적 인상과 달리 타당한 현실적 정세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대세였던 척화론이 보여주듯이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대명의리가 다수 사대부들의 공감을 얻었던 점에도 동의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주화론자들이 지지한 국가와 민의 안위, 민생의 보호가 유가 사상가들이 지지해온 중요한 의리라는 점을 좀 더 부각시키고자 한다.
척화-주화 논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이 논쟁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았다.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조선 내부의 정치적 상황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위 논쟁의 형성과정과 전개,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논쟁에 참여한 사대부들의 문집, 상소, 관찬 자료들의 관련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 당시 상이한 입장을 견지한 사대부들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최고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의 발언과 관점도 함께 분석함으로써 당대 정국의 흐름을 다각도로 이해하고자 했다.
논쟁의 분석 결과 척화론의 관점은 대명의리의 수호를 강조하며 충절과 지조, 신뢰 등 도덕적 가치를 의리의 핵심 내용으로 간주한 반면 주화론의 관점은 도덕적 의리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백성과 국가의 보존, 민생의 안정을 가장 주요한 논거로 제시한 차이점이 있었다. 이 차이점으로 인해 전쟁에 대처하는 그들의 관점도 상이했다. 충절과 의리를 중시한 척화론자들은 비록 형세 상 전쟁에서 매우 불리하더라도 대명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화론자들은 조선이 실제로 전쟁을 수행할 역량이 없으며, 승산 없는 전쟁에 국가와 백성을 희생시킬 수 없음을 근거로 전쟁이 불가함을 주장했다. 알려진 것처럼 당시 정국에서 척화론은 공론으로 인정받았던 반면 주화론은 도덕적, 정치적으로도 심각한 비판을 받았다. 국왕 인조 또한 공론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조선 정국에서 소수의 대신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척화론을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본론 마지막 장에서는 사대부들의 정치사상을 유교 정치에서 의리와 명분이 갖는 의미를 통해 분석하였다. 또한 민심과 공론이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서 어떤 성격을 갖는지 검토하였다. 유가 사상에서 의리의 덕목이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척화론이 강조한 충절과 신의에 바탕한 대명의리는 명과의 관계 이상으로 사회와 문명이 근간하는 전통적인 유가의 가치였다. 이에 못지않게 국가와 백성의 존망, 민생의 안정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유가의 전통적 의리였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보면 척화와 주화론 간의 논쟁은 유가 정치사상의 다양한 의리들에 대한 가치평가,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 차이에서 빚어진 논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 상황에서 척화론은 천리의 보편성을 추구했던 성리학적 유학의 권위, 인조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통치자의 정당성 문제와 같은 다른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공론의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다수 사대부들의 공론은 최고 결정권자인 군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특히 반정이라는 명분적 약점을 가졌던 인조의 입장에서는 사대부들의 공론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당시 척화론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던 이면에는 위와 같은 여러 정치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은 척화-주화 논쟁이 유가 정치사상의 전개와 흐름 속에서 해명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현실 사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척화-주화 논쟁은 존망의 순간에서 어떠한 의리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단의 문제였다. 당대 사대부들에게 대명의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규범이자 통치자의 존재 이유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통치자로서 사대부, 그리고 특히 군주는 백성과 국가의 생존을 지키는 것을 가장 막중한 책무로 삼았다. 민의 생존과 민생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유가 정치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의리였다. 따라서 척화-주화 논쟁을 관념적 명분과 실리의 추구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평가하기보다는 당시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여러 가치들에 대한 해석의 차이, 의리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쟁에서 빚어진 결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17세기 정묘・병자호란기에 전개된 척화-주화 논쟁이 유가 정치사상사의 주요한 쟁점과 연관된 사상적 논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시도했다.

목차

  1. Ⅰ. 서론 1
    1. 문제제기 1
    2. 선행연구 검토 6
    3. 연구방법 23
    Ⅱ. 정묘ㆍ병자호란의 배경 28
    1. 국제적 배경 29
    2. 조선의 상황 41
    Ⅲ. 정묘ㆍ병자호란기 사대부의 전쟁관 51
    1. 전쟁 양상과 관점의 분화 51
    2. 국왕 인조의 정치적 입장과 대응 61
    3. 척화-주화 논쟁으로 본 사대부의 전쟁관 75
    1) 척화론의 주장과 논거 76
    2) 주화론의 주장과 논거 93
    Ⅳ. 정묘ㆍ병자호란기 사대부의 정치사상 107
    1. 유교 정치에서 의리와 명분의 의미 108
    2. 민심과 공론의 정치적 성격 121
    3. 군주의 위상과 역할 133
    Ⅴ. 결론 148
    Ⅵ. 참고문헌 158
    Ⅶ. 영문 논문제출서 172
    Ⅷ. 영문 인준서 173
    Ⅸ. 영문 초록(ABSTRACT) 174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