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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 자료유형
- 학위논문
- 저자정보
- 지도교수
- 장동천
- 발행연도
- 2023
- 저작권
- 고려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3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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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0-30년대 상하이 문학장에서 시인, 출판가, 번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데카당스 미학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의도적’으로 지워진 작가 사오쉰메이(1906-1968)의 문학예술관을 고찰하고 있다. 데카당스는 19세기 유럽 사회의 근대화와 번영 및 자본주주의 확산으로 ''다시금'' 대두된 문예이론이자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5.4 운동을 기점으로 서양의 다양한 문예이론이 유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데카당스 역시 유입의 흔적을 보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했던 중국화 과정으로 말미암아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본고의 시작은 중국 현대문학에서 흔적은 보이지만 실체를 찾을 수 없는 데카당스 미학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1920년대 말부터 문단 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부득이하게 ‘의도적’으로 지워지거나 배재된 작가 또는 이론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데카당스와 사오쉰메이가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5.4 운동 초기 중국 내 외국 유학을 경험한 작가들 다수가 데카당스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목한 것은 구국과 계몽을 위한 니체의 ‘악마적’, ‘파괴적’ 정신의 데카당스였다. 일반적 통념상 데카당스의 저변을 이루는 주된 이미지인 ‘퇴폐’ 혹은 ‘타락’, ‘몰락’과 같은 요소는 배제한 것이었다. 반면 사오쉰메이가 중국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이와 같은 퇴폐적 요소와 에로티즘적 감성이 담김 시문학을 발표하면서이다. 이 때문에 이후 사오쉰메이의 문단 내에서의 활동은 주류 정치적 담론과 반대편에 선 것으로 인식된 나머지 정당한 평가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문학 창작을 비롯해 서점을 설립해 직접 간행물을 출판하며 많은 신진 작가들의 문학장으로의 진입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 번역을 통해 자신의 미학관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본고는 사오쉰메이의 활동을 크게 작가, 출판가, 번역가로서 나누어 그 안에서 구현하고 있는 데카당스 미학을 고찰하고자 했다.
우선 제2장에서는 데카당스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재정립하였다. 그동안 중국 현대문학에서 데카당스는 ‘퇴폐적’ 이미지 안에 갇혀있었던 만큼 19세기 말 유럽에서 다시금 대두된 데카당스 미학을 문예 이론으로서, 나아가 예술가들의 세계관으로서 살펴보았다.
이어 제 3장에서는 사오쉰메이의 시에서 나타나는 데카당스 미학 양상에 대해 연구하였다.사오쉰메이의 시 창작은 총 3권의 시집으로 구성되었으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인 ≪천당과 오월≫과 ≪꽃같은 죄악≫은 동일한 시가 중복되어 있는 만큼 두 번째 시집인 ≪꽃같은 죄악≫과 세 번째 시집인 ≪시25수≫를 통해 시적 표현과 시의 형식면에서 데카당스 미학을 되짚어 보았다. 특히 사오쉰메이는 영국 유학길에서 영향을 받은 서구 데카당스 작가들의 흔적이 시에서 다수 나타나고 있는바, 일부 시에서는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사오쉰메이의 시를 연구하였다.
제 4장에서는 출판가로서의 사오쉰메이의 활동에 집중하였다. 사오쉰메이는 자신의 첫 번째 시집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자신의 데카당스 미학이 문단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진 도시로 출판문화가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사오쉰메이는 자신이 직접 설립한 서점을 마치 서구의 ‘살롱’과 같은 공간처럼 활용하며 당시 문단 내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였고, 자신의 데카당스 미학이 문단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따라서 4장에서는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사오쉰메이의 데카당스 미학의 실천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데카당스 미학의 실천을 위한 또 다른 활동들을 살펴보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특히 사오쉰메이는 번역을 통해 서구 문화와의 교류를 꾸준히 실천했으며, 자신이 심취해 있던 데카당스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 왔다. 이것은 중국 신문학 작가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중 독자들의 새로운 취미 생활을 위한 노력이기도 했던 바, 데카당스 미학 실천의 굴절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중일전쟁 기간에도 사오쉰메이는 다양한 잡지 출판을 통해 오히려 외국에 중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데 앞장서며 상하이 문단에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 결론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사오쉰메이의 1920-30년대 상하이 문단에서의 데카당스 미학의 수용과 실천에 대한 결론을 갈무리하였다. 사오쉰메이의 연구는 2000년대 들어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문학 분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사오쉰메이는 데카당스를 삶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관으로 삼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데카당스의 예술 강령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실천한 작가였다. 사오쉰메이에 대한 이해의 정도나 작품 및 활동에 대한 해석의 깊이를 확대한다면 향후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데카당스 미학 연구의 외연 확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1920년대 말부터 문단 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부득이하게 ‘의도적’으로 지워지거나 배재된 작가 또는 이론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데카당스와 사오쉰메이가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5.4 운동 초기 중국 내 외국 유학을 경험한 작가들 다수가 데카당스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목한 것은 구국과 계몽을 위한 니체의 ‘악마적’, ‘파괴적’ 정신의 데카당스였다. 일반적 통념상 데카당스의 저변을 이루는 주된 이미지인 ‘퇴폐’ 혹은 ‘타락’, ‘몰락’과 같은 요소는 배제한 것이었다. 반면 사오쉰메이가 중국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이와 같은 퇴폐적 요소와 에로티즘적 감성이 담김 시문학을 발표하면서이다. 이 때문에 이후 사오쉰메이의 문단 내에서의 활동은 주류 정치적 담론과 반대편에 선 것으로 인식된 나머지 정당한 평가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문학 창작을 비롯해 서점을 설립해 직접 간행물을 출판하며 많은 신진 작가들의 문학장으로의 진입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 번역을 통해 자신의 미학관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본고는 사오쉰메이의 활동을 크게 작가, 출판가, 번역가로서 나누어 그 안에서 구현하고 있는 데카당스 미학을 고찰하고자 했다.
우선 제2장에서는 데카당스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재정립하였다. 그동안 중국 현대문학에서 데카당스는 ‘퇴폐적’ 이미지 안에 갇혀있었던 만큼 19세기 말 유럽에서 다시금 대두된 데카당스 미학을 문예 이론으로서, 나아가 예술가들의 세계관으로서 살펴보았다.
이어 제 3장에서는 사오쉰메이의 시에서 나타나는 데카당스 미학 양상에 대해 연구하였다.사오쉰메이의 시 창작은 총 3권의 시집으로 구성되었으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인 ≪천당과 오월≫과 ≪꽃같은 죄악≫은 동일한 시가 중복되어 있는 만큼 두 번째 시집인 ≪꽃같은 죄악≫과 세 번째 시집인 ≪시25수≫를 통해 시적 표현과 시의 형식면에서 데카당스 미학을 되짚어 보았다. 특히 사오쉰메이는 영국 유학길에서 영향을 받은 서구 데카당스 작가들의 흔적이 시에서 다수 나타나고 있는바, 일부 시에서는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사오쉰메이의 시를 연구하였다.
제 4장에서는 출판가로서의 사오쉰메이의 활동에 집중하였다. 사오쉰메이는 자신의 첫 번째 시집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자신의 데카당스 미학이 문단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진 도시로 출판문화가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사오쉰메이는 자신이 직접 설립한 서점을 마치 서구의 ‘살롱’과 같은 공간처럼 활용하며 당시 문단 내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였고, 자신의 데카당스 미학이 문단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따라서 4장에서는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사오쉰메이의 데카당스 미학의 실천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데카당스 미학의 실천을 위한 또 다른 활동들을 살펴보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특히 사오쉰메이는 번역을 통해 서구 문화와의 교류를 꾸준히 실천했으며, 자신이 심취해 있던 데카당스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 왔다. 이것은 중국 신문학 작가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중 독자들의 새로운 취미 생활을 위한 노력이기도 했던 바, 데카당스 미학 실천의 굴절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중일전쟁 기간에도 사오쉰메이는 다양한 잡지 출판을 통해 오히려 외국에 중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데 앞장서며 상하이 문단에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 결론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사오쉰메이의 1920-30년대 상하이 문단에서의 데카당스 미학의 수용과 실천에 대한 결론을 갈무리하였다. 사오쉰메이의 연구는 2000년대 들어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문학 분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사오쉰메이는 데카당스를 삶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관으로 삼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데카당스의 예술 강령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실천한 작가였다. 사오쉰메이에 대한 이해의 정도나 작품 및 활동에 대한 해석의 깊이를 확대한다면 향후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데카당스 미학 연구의 외연 확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차
- 국문 초록 ⅰ영문 초록 ⅳⅠ. 서론 11. 연구 동기 및 연구 목적 12. 선행 연구 검토 113. 연구 방법 및 연구 범위 27Ⅱ. 데카당스 개념의 확장과 수용 341. 데카당스 개념 정립 36(1) ''역사적 형태''에서 ''문화적 의미''로의 전환 36(2) 데카당스의 세기말 ''현상''으로의 이행 432. 데카당스의 중국적 수용 양상 52(1) 20세기 초 중국 문단의 데카당스 인식 55(2) 사오쉰메이의 데카당스 미학 수용 65-산문집 불과 살 火與肉을 중심으로Ⅲ. 시 창작에서의 데카당스 적용 811. 시의 상징성과 형식미 81(1) ''비규정 장소''에 담은 데카당스 상상력 81(2) ''미(美)''의 새로운 모색: 시와 음악의 조화 882. 시어에 담긴 금기와 위반의 변증법적 사유 94(1) 에로티즘의 시각화: 관능적 향락의 추구 94viii(2) 죽음: 소멸을 통한 초월의식 1063. ''시형(詩形)의 완미''와 ''미''의 재탄생 109(1) 시어의 대칭미 110(2) 행의 정제와 연의 균형 115Ⅳ. 출판 활동에서의 데카당스 실천 1231. 상하이의 새로운 출판문화 지형 124(1) 출판업의 부흥과 신흥 문학장의 형성 124(2) 온건한 계몽의 도구 ''화보'' 1312. 금옥서점(金屋書店)의 설립과 문화자본의 확보 138(1) 중국식 문예공론장의 조성: 서점의 살롱화 139(2) 금옥월간 金屋月刊: 데카당스 미학의 구조적 실천 1483. 데카당스 미학의 시각화 162(1) 영사판 인쇄기의 도입과 문화 권력의 확장 163(2) ''문화대중화''의 이상 실현 165Ⅴ. 상하이 문화계에서의 데카당스 공유와 전파 1681. 동시기 문화인들과의 교류 169(1) 문학 유파와의 미학관 공유 169(2) ''미''의 완성을 위한 미술계와의 협력 1792. 소설ㆍ번역을 통한 데카당스 미학의 굴절 185(1) 소설 창작 속 조지 무어의 미학 재탐색 185(2) 번역을 통한 서구문화와의 교류 188Ⅵ. 결론 190【參考文獻】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