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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대내외의 적대 세력에 맞서기 위한 국가의 무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고려시대는 국가 중심의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가 정립된 시기였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시대의 무기 운용 제도의 전체적인 양상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했다.
고려초, 후삼국의 장기적인 전시 상황 속에서 점차 태조(왕건) 세력은 여타 호족들에 비해 군사적 우위를 차지했지만, 통일 후 각지 호족들의 무기 운용 권한은 회수하지 못했다. 이후 광종은 국왕 직속의 시위군과 개경을 방위하는 경군을 구분하는 이원적 무기 운용 체제를 성립시켰고, 성종은 당과 송의 제도를 도입해 군령 기구인 중추원, 군정 기관인 병부와 고조, 무기 생산 기관인 군기감을 설치했으며, 전국의 무기를 회수하고, 통제하는 제도적 기반을 닦았다. 현종은 도병마사, 중방을 설치해 무기 운용 기구의 상호견제를 꾀했고, 군법을 제정해 고려군 전체에 무기 관련 규율을 강제했다. 이후 문종은 위위시 아래 내궁전고를 설치해 궁내의 무기 생산 기능을 강화했다. 이로써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무기 운용의 내용과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의 무기 생산은 중앙에서는 군기감과 내궁전고, 양계에서는 서경 군기감과 각 주진, 남도에서는 각 도 및 주현의 무기 생산 시설에서 공장들을 투입해 이뤄졌다. 국가는 개경과 서경을 중심으로 특수 무기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생산된 무기는 개경에 집중적으로 보관되었고, 양계 및 남도에 또한 주진군과 주현군 운용을 위한 무기가 보관되었다. 국가는 평시와 전시의 법령을 제정해 무기 사용을 통제했고, 출납 절차를 통해 무기가 무단으로 동원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훈련과 열병, 열사를 통해서는 무기 활용 능력과 함께 무기 상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고려중기·후기에는 왕권 약화, 철물에 대한 국가 지배의 약화, 군인층의 분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무기 생산력이 저하되고, 무기 운용이 부실해졌다. 국가는 별무반의 편성을 계기로 무기 운용력을 강화하고자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신란 이후, 집정 무인에 의한 사적인 무기 운용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왕을 중심으로 한 무기 운용 체제의 구심점이 사라졌고, 이는 지방 무기 운용의 분권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무기 운용의 인적, 물적 기반에 큰 피해가 있기도 했다. 고려가 몽골(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중앙의 무기 운용은 원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으며, 그 결과 고려의 독자적 무기 운용 제도는 마비되었다.
이 시기, 국가는 전시의 무기 공급을 위해 각종 도감을 만들어 무기 생산을 보조하도록 했다. 원 간섭기에는 군기감이 민부에 병합되었고, 지방의 주요 철 산지와 만호부를 중심으로 지방의 무기 운용이 확대되었다. 한편, 고려전기의 군법 복구를 통한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도평의사사, 중방은 원의 간섭으로 인해 무기 운용에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국왕의 권위를 과시하는 열병과 열사 또한 무신란 이후에는 거의 시행되지 못했다.
고려말, 원과 명이 교체되고, 왜구의 침입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공민왕은 국왕 중심의 무기 운용 체제의 복구를 꾀했으나 성과가 크지 않았으며, 우왕대에는 방어도감, 화통도감을 중심으로 도당 주도의 무기 운용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는 중앙의 무기 생산력이 약화되었고, 무기 동원의 대상이 관료 및 백성 전체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지방의 독자적인 무기 운용이 확대되었다. 이에 신왕조 개창 세력은 군기시와 중방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를 복구하면서 무기 운용권을 장악했다. 결국 고려말의 무기 운용은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무기 생산력의 약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시대 무기 운용 제도는 국가가 집권적 무기 운용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고려전기 정립된 무기 운용 제도는 이후의 대내외적 변화에 따라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국가는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을 통해 집권적 무기 운용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이처럼 무기 운용은 고려시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 관한 연구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고려초, 후삼국의 장기적인 전시 상황 속에서 점차 태조(왕건) 세력은 여타 호족들에 비해 군사적 우위를 차지했지만, 통일 후 각지 호족들의 무기 운용 권한은 회수하지 못했다. 이후 광종은 국왕 직속의 시위군과 개경을 방위하는 경군을 구분하는 이원적 무기 운용 체제를 성립시켰고, 성종은 당과 송의 제도를 도입해 군령 기구인 중추원, 군정 기관인 병부와 고조, 무기 생산 기관인 군기감을 설치했으며, 전국의 무기를 회수하고, 통제하는 제도적 기반을 닦았다. 현종은 도병마사, 중방을 설치해 무기 운용 기구의 상호견제를 꾀했고, 군법을 제정해 고려군 전체에 무기 관련 규율을 강제했다. 이후 문종은 위위시 아래 내궁전고를 설치해 궁내의 무기 생산 기능을 강화했다. 이로써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무기 운용의 내용과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의 무기 생산은 중앙에서는 군기감과 내궁전고, 양계에서는 서경 군기감과 각 주진, 남도에서는 각 도 및 주현의 무기 생산 시설에서 공장들을 투입해 이뤄졌다. 국가는 개경과 서경을 중심으로 특수 무기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생산된 무기는 개경에 집중적으로 보관되었고, 양계 및 남도에 또한 주진군과 주현군 운용을 위한 무기가 보관되었다. 국가는 평시와 전시의 법령을 제정해 무기 사용을 통제했고, 출납 절차를 통해 무기가 무단으로 동원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훈련과 열병, 열사를 통해서는 무기 활용 능력과 함께 무기 상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고려중기·후기에는 왕권 약화, 철물에 대한 국가 지배의 약화, 군인층의 분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무기 생산력이 저하되고, 무기 운용이 부실해졌다. 국가는 별무반의 편성을 계기로 무기 운용력을 강화하고자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신란 이후, 집정 무인에 의한 사적인 무기 운용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왕을 중심으로 한 무기 운용 체제의 구심점이 사라졌고, 이는 지방 무기 운용의 분권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무기 운용의 인적, 물적 기반에 큰 피해가 있기도 했다. 고려가 몽골(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중앙의 무기 운용은 원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으며, 그 결과 고려의 독자적 무기 운용 제도는 마비되었다.
이 시기, 국가는 전시의 무기 공급을 위해 각종 도감을 만들어 무기 생산을 보조하도록 했다. 원 간섭기에는 군기감이 민부에 병합되었고, 지방의 주요 철 산지와 만호부를 중심으로 지방의 무기 운용이 확대되었다. 한편, 고려전기의 군법 복구를 통한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도평의사사, 중방은 원의 간섭으로 인해 무기 운용에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국왕의 권위를 과시하는 열병과 열사 또한 무신란 이후에는 거의 시행되지 못했다.
고려말, 원과 명이 교체되고, 왜구의 침입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공민왕은 국왕 중심의 무기 운용 체제의 복구를 꾀했으나 성과가 크지 않았으며, 우왕대에는 방어도감, 화통도감을 중심으로 도당 주도의 무기 운용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는 중앙의 무기 생산력이 약화되었고, 무기 동원의 대상이 관료 및 백성 전체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지방의 독자적인 무기 운용이 확대되었다. 이에 신왕조 개창 세력은 군기시와 중방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를 복구하면서 무기 운용권을 장악했다. 결국 고려말의 무기 운용은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무기 생산력의 약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은 한계가 있었다.
고려시대 무기 운용 제도는 국가가 집권적 무기 운용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고려전기 정립된 무기 운용 제도는 이후의 대내외적 변화에 따라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국가는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을 통해 집권적 무기 운용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이처럼 무기 운용은 고려시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 관한 연구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목차
- Ⅰ. 서론 1Ⅱ. 고려전기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형성 111. 후삼국 시기의 개별 독립적인 무기 운용과 태조의 회수 노력 112. 혜종~성종 시기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 성립 273. 목종~문종 시기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정립과 강화 45Ⅲ. 고려전기 무기 운용의 내용과 특징 661. 무기의 생산과 보관 및 관리 662. 무기 운용에 대한 규제 1013. 무기 활용 능력 제고 120Ⅳ. 고려중기·후기 무기 운용 제도의 동요와 마비 1341. 별무반의 편성과 무기 운용 제도의 변화 1342. 무신란 이후 중앙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이완 1483. 元의 무기 통제와 무기 운용 해체 152Ⅴ. 고려중기·후기 무기 운용의 변화와 위축 1651. 무기 운용 영역의 변동과 마비 1652. 무기 운용 규제의 자의적 적용과 형해화 1823. 열병·열사의 동요와 축소 186Ⅵ. 고려말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 노력과 한계 1961. 공민왕 시기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 회복 노력 1962. 우왕 시기 도당 중심의 무기 운용 2093. 위화도회군 이후 집권적 무기 운용 제도의 회복과 한계 228Ⅶ. 결론 239참고문헌 248ABSTRACT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