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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영남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조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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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창간된 조선일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민족자결주의의 옹호와 국제연맹의 결성 등의 결성을 통하여 평화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형성은 억압받는 인민들의 해방에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조선일보는 미국과 국제연맹 등 제국주의 열강들의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현재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들의 진의는 워싱턴 회의(1921-1922)를 통해 밝혀지게 된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압박을 가할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현재의 국제정세를 따를 것을 요청하면서 국제정세를 세계평화로의 이행으로 인식을 굳혔다.
한편, 당시 조선에서는 자치운동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이미 자치가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을 계획하고 있는 해외 식민지가 있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해외 식민지의 자치정책 소식에 주목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영향과 반응을 살펴보았다. 자치와 관련된 식민지로는 필리핀, 아일랜드, 인도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는 자치정책이 아닌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의 진의가 밝혀졌기 때문에 자치정책 역시 이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판단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일보는 해외 식민지 사례를 통해 자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립하였다.
조선일보는 1924년 9월 비타협민족주의세력에 게 인수된 이후에도 국제연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아가 이 시기 조선일보는 국제연맹을 대체할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조직은 약소민족으로만 구성되어야 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회교도국제연맹, 아시아국제연맹, 반제국주의연맹 등의 연맹이 결성되었다. 이 중에는 러시아와 피압박계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지하듯 비타협민족주의세력은 사회주의자들과의 협력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조직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비타협민족주의세력은 자치정책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자들과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른 식민지 사례들을 보도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로코에 주목하고 있었다.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공산당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이 협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에 조선일보는 모로코에 대한 기사를 통해 사회주의자들과의 협력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1920년대 초중반 조선일보는 세계평화로의 이행이라는 국제정세의 인식하에 민족운동론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시국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차

  1. Ⅰ. 머리말 1
    Ⅱ.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와 자치 인식 5
    1. 세계 개조에 대한 기대와 국제연맹 인식 변화 5
    2. 해외 식민지 현상 보도를 통한 자치운동 비판 10
    Ⅲ. 약소민족 연대와 좌우합작에 기반한 민족운동 모색 23
    1. 약소민족 주도의 국제 연대 형성 주목 23
    2. 좌우합작운동 전개를 위한 해외 식민지 실태 보도 31
    Ⅳ. 맺음말 44
    참고문헌 48
    Abstract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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