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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한국전쟁 참전국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이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전쟁 당시 같은 편이었던 북한과 중국의 집단기억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영도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전쟁 때 중국의 ‘항미원조’로 인해 양국이 ‘혈맹’을 맺게 되었다는 표현도 많이 쓴다. 이와 같은 모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본문은 다음과 같은 연구질문을 제기했다.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의 혈맹론 강조는 자주적 승리라는 공식기억과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왜 이를 공식기억에 편입시켰는가? 어떤 방식으로 편입시켰는가? 그리고 혈맹론에 대한 강조는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가?
이러한 연구질문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집단기억에 관한 이론을 활용하여 1950년부터 1970년까지 북한선전에서 나타난 중국인민지원군과 관련된 내용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 집단기억의 구성 그리고 북중관계 변동에 따라 발생한 집단기억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집단기억은 한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과거에 대한 공동 기억이다. 집단기억은 연속성과 변동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은 소설과 같은 문화적 매체를 통해 집단기억을 연구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이론을 통해 북한 집단기억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또한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로 국내적 기억 논쟁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집단기억은 사실상 북한 정부가 주도하는 공식기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본 연구는 북한의 공식기억과 북중관계 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본 연구는 북한의 『로동신문』, 『근로자』, 『조선문학』 등 1차 자료를 통해 북한의 집단기억을 고찰했다.
우선 전쟁 기간 동안 북한에서 지원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를 살펴본 바 당시 북한은 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양국 간의 단결친선을 부각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와 달리 전쟁 발발 시 북중 지도부 사이에는 많은 갈등이 존재했다.
정전 이후 1961년 북중 동맹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북한 선전에서 나타난 지원군과 관련된 내용의 변화는 당시 북중관계를 악화시키는 8월종파사건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당시 중국의 대북 간섭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고 이에 따라 혈맹론에 대한 강조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헝가리 혁명의 영향으로 서로에 대한 북중 양국의 기대가 다시 맞춰졌다.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중 하나가 북한 선전에서 혈맹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58년 북중관계는 최고조에 달했고 지원군 완전 철수에 대한 합의도 그에 대한 징표 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북한 선전에서 철군과 이별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 후 중소 분쟁의 시작과 심화에 따라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채택하여 외교적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혈맹론에 대한 강조가 다시금 줄어들었다.
다음은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 특수관계의 굴절과 회복 시기이다. 북중 동맹조약 체결 이후 1963년까지 『조선문학』에는 지원군과 관련된 작품이 실렸고 『로동신문』도 2년 연속으로 특집 보도를 게재했다. 이는 당시 북중관계가 우호적이고 상대국에 대한 기대가 모두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쿠바미사일위기 등 사건으로 인해 소련으로부터의 방기 우려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중국으로 편향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소련과 대북 영향력을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대중국 편승을 환영했다.
그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1965년에는 기념행사를 성대히 진행했고 이틀 연속 특집 보도를 실었지만 다른 시기에는 지원군 참전을 기념하는 행사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만 있었다. 이는 북한이 중국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중국이 소련과 함께 미국에 대항하자는 북한 측의 제의를 거절했다는 사실에 대한 북한은 불만이 드러난 것이다. 북한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민간에서 북한을 수정주의로 비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북한 선전에서 지원군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변화를 총결하겠다. 첫 번째 공통점은 전쟁의 ‘승리자’ 역할에 대한 강조이고 두 번째는 지원군과 북한인민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패턴이다. 마지막으로는 적군의 악행을 묘사함으로써 적에 대한 증오를 환기시키는 패턴이다. 변화는 지원군 전투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는데 구체적으로 그의 비중과 전형적인 인물에 대한 언급 2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연구질문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집단기억에 관한 이론을 활용하여 1950년부터 1970년까지 북한선전에서 나타난 중국인민지원군과 관련된 내용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 집단기억의 구성 그리고 북중관계 변동에 따라 발생한 집단기억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집단기억은 한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과거에 대한 공동 기억이다. 집단기억은 연속성과 변동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은 소설과 같은 문화적 매체를 통해 집단기억을 연구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이론을 통해 북한 집단기억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또한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로 국내적 기억 논쟁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집단기억은 사실상 북한 정부가 주도하는 공식기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본 연구는 북한의 공식기억과 북중관계 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본 연구는 북한의 『로동신문』, 『근로자』, 『조선문학』 등 1차 자료를 통해 북한의 집단기억을 고찰했다.
우선 전쟁 기간 동안 북한에서 지원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를 살펴본 바 당시 북한은 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양국 간의 단결친선을 부각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와 달리 전쟁 발발 시 북중 지도부 사이에는 많은 갈등이 존재했다.
정전 이후 1961년 북중 동맹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북한 선전에서 나타난 지원군과 관련된 내용의 변화는 당시 북중관계를 악화시키는 8월종파사건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당시 중국의 대북 간섭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고 이에 따라 혈맹론에 대한 강조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헝가리 혁명의 영향으로 서로에 대한 북중 양국의 기대가 다시 맞춰졌다.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중 하나가 북한 선전에서 혈맹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58년 북중관계는 최고조에 달했고 지원군 완전 철수에 대한 합의도 그에 대한 징표 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북한 선전에서 철군과 이별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 후 중소 분쟁의 시작과 심화에 따라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채택하여 외교적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혈맹론에 대한 강조가 다시금 줄어들었다.
다음은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 특수관계의 굴절과 회복 시기이다. 북중 동맹조약 체결 이후 1963년까지 『조선문학』에는 지원군과 관련된 작품이 실렸고 『로동신문』도 2년 연속으로 특집 보도를 게재했다. 이는 당시 북중관계가 우호적이고 상대국에 대한 기대가 모두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쿠바미사일위기 등 사건으로 인해 소련으로부터의 방기 우려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중국으로 편향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소련과 대북 영향력을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대중국 편승을 환영했다.
그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1965년에는 기념행사를 성대히 진행했고 이틀 연속 특집 보도를 실었지만 다른 시기에는 지원군 참전을 기념하는 행사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만 있었다. 이는 북한이 중국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중국이 소련과 함께 미국에 대항하자는 북한 측의 제의를 거절했다는 사실에 대한 북한은 불만이 드러난 것이다. 북한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민간에서 북한을 수정주의로 비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북한 선전에서 지원군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변화를 총결하겠다. 첫 번째 공통점은 전쟁의 ‘승리자’ 역할에 대한 강조이고 두 번째는 지원군과 북한인민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패턴이다. 마지막으로는 적군의 악행을 묘사함으로써 적에 대한 증오를 환기시키는 패턴이다. 변화는 지원군 전투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는데 구체적으로 그의 비중과 전형적인 인물에 대한 언급 2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보인다.
목차
- I. 서론 11. 문제제기 12. 선행연구 검토 43. 논문의 구성 7II. 이론적 고찰 91. 집단기억 이론 91) 집단기억의 개념 및 유형 92) 집단기억의 구성 과정 142. 집단기억을 변화시키는 국내적·국제적 변수 181) 국내적 변수: 정권 교체 및 정권 유형 182) 국제적 변수: 힘의 분배, 인센티브 구조 및 양자관계 203. 집단기억과 외교정책 224. 분석틀 및 연구방법 25III. ‘전통적 특수관계’의 확립(1950-1953) 301. 중국인민지원군 북한전선 참전으로 북중 협동작전의 시작 및 과정 속의 갈등 302. 전쟁 기간 동안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의 서사 351) 개황 352) 내용 분석: 공유된 과거로 공감대 환기, 협동작전 그리고 북중인민의 두터운 정에 대한 형상화 38IV. ‘전통적 특수관계’의 전개(1953-1961) 411. 1953-1961 년 북중관계의 변화 411) 북한의 권력 투쟁: 연안계 숙청 및 중국의 대북 영향력 변화 412) 8 월종파사건: 중·소 개입으로 북중관계의 악화 453) 국제공산진영의 정세 변화: 김일성 권력 공고화 및 중국 대북 유화정책으로의 전환 484) 중소 분기 시작: 북한 등거리외교 실시 및 중국에게 북한 중요성의 제고 512. 이 시기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의 집단기억 541) 개황 542) 북중관계 변동에 따른 지원군과 관련된 내용의 수량 변화 613) 내용 분석: 이원 대림의 ‘승리자’ 서사 및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적 ‘정(情)’으로 구성된 포괄적 성격 65V. ‘특수관계’의 굴절과 회복(1961-1970) 781. 1961-1970 년 북중관계의 변화 781) 중소 분기 심화: 대북 영향력을 둘러싼 중소 경쟁 및 북한 ‘자주성’의 재확립 782) 중국의 고립 상태: 안보 이익을 위한 북중 동맹의 재확인에 따른 북중 관계 회복 833) 중국의 대미 데탕트: 북한의 통일환경 조성의 노력과 실패, 그리고 중국의 대북 ‘보상’ 872. 이 시기 중국 역할에 대한 북한 집단기억의 변화 901) 개황 902) 이 시기 북한 집단기억의 변화에 대한 분석 943) 내용 분석 95VI. 결론 99참고문헌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