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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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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김종훈
발행연도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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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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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만선일보』에 실린 문학 관련 담론을 통해 만주 조선인 문학 장(場)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고찰하였다. 1937년에 『만몽일보』와 『간도일보』의 통합으로 발간된 『만선일보』는 위만주국의 유일한 조선어 일간지로, 만주 조선인 문학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만주 조선인 문학에 관한 연구와 문학사 기술은 이 중요한 지면 공간에서 발생한 유동적이고 복잡한 만주 조선인 문학 장의 형성 과정과 내부 관계를 소외시켰다. 본 논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주 조선인’이라는 특정한 신분을 바탕으로 한 ‘위만주국’, ‘식민지 조선’, 그리고 ‘일본 (제국)’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에 주목했고, 이에 따라 표상된 ‘만주 문학’, ‘조선 문학’, 그리고 ‘(일본) 국민문학’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연구의 기본적 시각으로 삼았다.
Ⅱ장에서는 만주 조선인 문학 장 의식의 출현 동기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초기 모색 과정을 고찰하였다. 1절에서는 1940년 초부터 시작된 재만 조선인을 지향한 문화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획기적인 기획인 ‘만주 조선문학 건설 신제의’ 등장의 외부적 요인을 분석했다. 조선인 협화 문화부의 재편 활동과 『만선일보』 편집국장의 교체는 이 기획이 학예면에 게재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2절에서는 1940년 초부터 재만 조선 문인이 조선 문학에서 만주 조선인 문학으로의 의식적 전환을 이루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 문단의 문인들이 만주 지역에 대한 서사적 형태의 전환과 위만주국 성립에 따른 조선인 이민자의 업종 구조와 지역적 분포의 변화는 재만 조선 문인들이 만주 조선인 문학의 창작 방향을 논의하게 된 원인이었다. 또한, 3절에서는 재만 조선 문인들이 만주 문단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와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재만 조선 문인은 만주 문단에 진입하려면 일본어나 중국어로 창작하거나 번역하는 기존 만주 문단의 교류 모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재만 일본인과 중국인의 의견은 조선어 작품을 만주 문학의 부차적 요소로 간주하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했다. 4절에서는 만주 조선인 문학 장에서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초기적 규범화 시도를 고찰했다.
Ⅲ장에서는 1940년 6월 『만선일보』 재편에 따른 학예면 확대를 계기로, 만주 조선인 문학 장의 건설 방향성 확립 과정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문학 장 내부의 권력 구조 분화를 고찰했다. 1절에서는 1940년 6월부터 8월 사이에 재만 조선 문인이 악화된 식민지 조선의 언론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6월 1일부터 『만선일보』의 지면 재편으로 학예면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창작 기획이 출현했다. 학예면에 게재된 「문학이여 현실로 돌아가라」는 위만주국과 식민지 조선의 언론·정치적 환경 차이가 만주 조선인 문학에 중요한 책임감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8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강제 폐간 사건으로 재만 조선 문인들의 위기감과 사명감이 부각되었고, 이를 신속하게 방어하고 대응하기 위해 『만선일보』는 두 번째 재편을 거쳐 ‘국어란’과 ‘조선판’을 설치했다. 2절에서는 『만선일보』 학예면의 논쟁과 재만 조선 문인의 태도 변화를 살펴보았다. 3절에서는 논쟁 이후, 문화부 문예반에서 열린 12월 제1회 예회에서 제기된 ‘만주 조선인 문학의 성격 규정’과 그에 따른 다양한 담론을 분석했다.
Ⅳ장에서는 위만주국 홍보 신체제의 확립과 태평양 전쟁에 따른 만주 조선인 문학 장의 재편성을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1940년 12월부터 1941년 3월 『예문지도요강』 발표 시기까지 위만주국 정부 기구, 협화회, 그리고 만선일보사에서 나타난 정책과 인사 조정을 다루었다. 이 시기 동안 위만주국은 신문, 출판, 홍보, 문예 검열 등의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통제를 강화하였다. 2절에서는 스가와라 리이치 취임 이후 『만선일보』 학예면에서 나타난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일본 문단의 국민문학 담론이 일본인 편집국장의 부임에 따라 번역되어 연재되었고, 개인주의를 향락주의, 쾌락주의, 퇴폐주의 등으로 규정하여 이를 유물주의와 연결지었다. 3절에서는 태평양전쟁기 만주 조선인 문학 장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문예가 애국 대회’에 따른 『만선일보』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칼럼에서 재만 조선 문인 총 11명의 전쟁 지지 선언이 발표되었다. 「시의 동양 정신」에서는 ‘대동아공영권’ 이념을 옹호하고 태평양 전쟁의 문화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동양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 논문을 통해 재만 조선인의 정체성 문제, 문학 장의 구축 방향, 그리고 창작과 비평의 관계 등의 논의가 『만선일보』에 실린 문학 관련 담론을 통해 잘 확인될 수 있다. 또한, 격변하는 일제 말기의 정치적·사회적 상황 속에서 만주 조선인 문학 장 내외부의 중첩되거나 상충하는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났다.

목차

  1. 국문초록 ⅰ
    Abstract iv
    사사 viii
    목차 ix
    표 목차 x
    I. 서론 1
    1. 문제 제기 1
    2. 연구사 검토 4
    3. 연구 범위와 시각 12
    II. 문학 장 의식의 출현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초기 모색 15
    1. 문화 환경의 변화에 따른 문학 건설 기획의 등장 15
    2. 조선 문학에서 만주 조선인 문학으로의 인식 전환 28
    3. 일만(日滿)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한 만주 문학의 건설 참여 41
    4. 문학 장의 질서 확립을 위한 규범화 시도 57
    III. 문학 장 건설의 방향성 확립과 권력 구조의 분화 78
    1. 학예면 확대에 따른 창작 기획의 증가 78
    2. 문학 장 내부 갈등의 격화와 비평 역할의 재조명 89
    3. 지역성과 대중성을 고려한 창작 방향성 논의 108
    IV. 홍보 신체제의 확립과 전시 문학 장의 재편성 121
    1. 언론 통제 강화에 따른 문화 공간의 위축 121
    2. 국민문학 담론의 이식과 개인주의 경향 배척 127
    3. 문장 보국의 참여와 동양 정신의 옹호 138
    V. 결론 150
    참고문헌 155
    부록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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