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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연구는 1910∼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 건립된 구 대한제국 황실의 서양식 저택(洋館)을 살펴보고 그 건축적 특성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대한제국 황족은 일본 황실 체계에 편입되었고 새로 ‘왕공족(王公族)’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이왕가(李王家)라 불리었으며, 왕위계승자를 중심으로 한 직계는 왕족(王族), 그 형제를 중심으로 한 방계는 공족(公族)이 되었다. 1920년대부터 이왕가는 대부분 일본에 거주하였으며 이를 위한 거처가 양관의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왕가 양관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한국에서의 왕실 양관 연구는 대한제국기 궁궐 중심의 건축 활동에 집중되어 있으며, 궁궐 바깥에 건립된 주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은 편이다. 일본에서의 이왕가 양관 연구는 일부 연구에서 일본 황족 저택의 개별 사례로 간략하게 언급되는 정도로, 대다수의 연구에서는 이왕가 양관을 일본 황족 저택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왕가 양관을 건축적으로 분석하려는 접근과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에 건립된 이왕가 양관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건축적 특성을 밝히고자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왕가라는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주택이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까지도 파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조선에 건립된 두 동의 양관은 용도, 입지, 건축물의 입면 등에서 건축주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경우 양관은 개인 소유로 건립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 건립되던 다른 양관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다. 반면, 일본에 건립된 일곱 동은 건립 논의 단계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해당 양관들은 일본 황족 저택의 조영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인 1925년∼1926년 『왕공가궤범』의 제정과 함께 이왕가에 대한 우대 조치의 일환으로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일종의 정치적 선전의 성격을 가지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양관의 배치와 평면, 입면 등 구체적인 계획 요소를 중심으로 소유주의 신분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왕가 내부에서도 왕족과 공족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구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왕족인 이은의 이왕가동경저는 일본 황족 저택과 평면 구성 및 입면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였던 반면, 공족 소유의 다른 양관들은 일본 황족 저택의 기본 개념만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을 뿐, 구체적인 공간 구성이나 입면에서는 유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이왕가 양관이 일본 황족 저택을 기준으로 삼는 가운데, 소유주의 신분에 따라 왕족에서 공족 순으로 그 영향 정도가 달랐음을 보여준다.
이상 내용을 바탕으로 이왕가 양관의 다층적인 성격을 정리해 보았다. 이왕가 양관은 거주자, 건립 위치, 건축물이 각각 한국, 일본, 서양으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왕가 양관의 절충적 모습을 ‘서양 건축 문화의 수용’, ‘일본 황족 저택의 영향’, ‘한국 주거 문화의 지속’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먼저 이왕가 양관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거쳐 해석된 서양 건축 문화가 반영되어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건축 문화보다도 서양 건축 문화의 강조를 통해 주요한 공간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왕가가 일본에 건너간 이후 한국에서의 전통적인 주거 문화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왕가 양관 전반에 영향을 끼친 일본 건축 문화의 영향이다. 크게 공간 개념과 실내 의장적 측면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당시 사회에서 상류 주택에 요구되던 격식과 문화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거주자의 위상과 지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이왕가 양관에서 확인되는 한국 건축 문화의 영향은 접객용 양관과 실제 거주 목적의 한옥을 병치하여 한국식 주거 문화를 이어 나간 운현궁 양관, 일본에 건립되었음에도 저택 내부에 온돌실을 조성한 이우공저, 그리고 이왕가의 왕실 문화를 계승하고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유교식 제례 공간을 조성한 이왕가동경저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던 이왕가 양관 전수를 파악하는 한편, 이왕가 양관의 성격이 일제강점기 일본이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인 ‘문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왕가 양관이 단순히 서양식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서양+일본+한국의 건축 문화가 절충된 사례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 그리고 거주자의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대한제국 황족은 일본 황실 체계에 편입되었고 새로 ‘왕공족(王公族)’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이왕가(李王家)라 불리었으며, 왕위계승자를 중심으로 한 직계는 왕족(王族), 그 형제를 중심으로 한 방계는 공족(公族)이 되었다. 1920년대부터 이왕가는 대부분 일본에 거주하였으며 이를 위한 거처가 양관의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왕가 양관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한국에서의 왕실 양관 연구는 대한제국기 궁궐 중심의 건축 활동에 집중되어 있으며, 궁궐 바깥에 건립된 주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은 편이다. 일본에서의 이왕가 양관 연구는 일부 연구에서 일본 황족 저택의 개별 사례로 간략하게 언급되는 정도로, 대다수의 연구에서는 이왕가 양관을 일본 황족 저택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왕가 양관을 건축적으로 분석하려는 접근과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에 건립된 이왕가 양관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건축적 특성을 밝히고자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왕가라는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주택이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까지도 파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조선에 건립된 두 동의 양관은 용도, 입지, 건축물의 입면 등에서 건축주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경우 양관은 개인 소유로 건립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 건립되던 다른 양관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다. 반면, 일본에 건립된 일곱 동은 건립 논의 단계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해당 양관들은 일본 황족 저택의 조영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인 1925년∼1926년 『왕공가궤범』의 제정과 함께 이왕가에 대한 우대 조치의 일환으로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일종의 정치적 선전의 성격을 가지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양관의 배치와 평면, 입면 등 구체적인 계획 요소를 중심으로 소유주의 신분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왕가 내부에서도 왕족과 공족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구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왕족인 이은의 이왕가동경저는 일본 황족 저택과 평면 구성 및 입면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였던 반면, 공족 소유의 다른 양관들은 일본 황족 저택의 기본 개념만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을 뿐, 구체적인 공간 구성이나 입면에서는 유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이왕가 양관이 일본 황족 저택을 기준으로 삼는 가운데, 소유주의 신분에 따라 왕족에서 공족 순으로 그 영향 정도가 달랐음을 보여준다.
이상 내용을 바탕으로 이왕가 양관의 다층적인 성격을 정리해 보았다. 이왕가 양관은 거주자, 건립 위치, 건축물이 각각 한국, 일본, 서양으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왕가 양관의 절충적 모습을 ‘서양 건축 문화의 수용’, ‘일본 황족 저택의 영향’, ‘한국 주거 문화의 지속’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먼저 이왕가 양관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거쳐 해석된 서양 건축 문화가 반영되어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건축 문화보다도 서양 건축 문화의 강조를 통해 주요한 공간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왕가가 일본에 건너간 이후 한국에서의 전통적인 주거 문화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왕가 양관 전반에 영향을 끼친 일본 건축 문화의 영향이다. 크게 공간 개념과 실내 의장적 측면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당시 사회에서 상류 주택에 요구되던 격식과 문화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거주자의 위상과 지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이왕가 양관에서 확인되는 한국 건축 문화의 영향은 접객용 양관과 실제 거주 목적의 한옥을 병치하여 한국식 주거 문화를 이어 나간 운현궁 양관, 일본에 건립되었음에도 저택 내부에 온돌실을 조성한 이우공저, 그리고 이왕가의 왕실 문화를 계승하고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유교식 제례 공간을 조성한 이왕가동경저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던 이왕가 양관 전수를 파악하는 한편, 이왕가 양관의 성격이 일제강점기 일본이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인 ‘문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왕가 양관이 단순히 서양식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서양+일본+한국의 건축 문화가 절충된 사례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 그리고 거주자의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목차
- 제1장 서론 11.1 연구의 배경과 목적 11.2 연구의 대상 및 방법 61.3 선행연구 검토 11제2장 이왕가의 조직과 저택 142.1 이왕가의 구성 및 변천 142.1.1 이왕가의 탄생과 배경 142.1.2 주요 구성원 및 인물 관계 222.2 본저와 별저의 건설 25제3장 20세기 이왕가 소유 양관 313.1 왕족(王族) 저택 313.1.1 도쿄 본저 311) 이왕가동경저 312) 이왕가 가미메구로별저 503.1.2 교외 별저 641) 이왕가 오이소어별저 642) 이왕가 나스어별저 743.2 공족(公族) 저택 833.2.1 조선 본저 831) 운현궁 양관 832) 사동궁 양관 963.2.2 도쿄 별저 1051) 이우공저 1052) 이강공저 1163) 이건공저 1243.3 소결 135제4장 이왕가 양관의 건축 계획적 특성 1374.1 건립 시기와 위치에 따른 특성 1374.1.1 조선에 건립된 사례 1374.1.2 일본에 건립된 사례 1424.2 소유주의 지위에 따른 특성 1514.2.1 배치 계획 1514.2.2 평면 계획 1574.2.3 입면 계획 1654.3 소결 173제5장 이왕가 양관의 절충적 특성 1775.1 서양 건축 문화의 수용 1775.1.1 새로운 재료와 구조의 도입 1775.1.2 서양 주거 문화의 도입 1905.2 일본 황족 저택의 영향 1965.2.1 오모테(表)와 오쿠(奧)의 공간 개념 1965.2.2 일본식 실내 공간 조성 2015.3 한국 주거 문화의 지속 2065.3.1 양관과 한옥의 병치 2065.3.2 전통 생활공간과 왕실 문화의 계승 212제6장 결론 217참고문헌 223부록 : 주요 용어 일람표 237Abstract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