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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5권 제2호
발행연도
수록면
163 - 213 (5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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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이 논문의 목적은 개항기의 승려로 개화당(開化黨)의 일원이었던 이동인(李東仁, 1849(?)-1881)의 행적을 통해 개화당의 정치적 목적을 재검토하고, 1880년대 초반 개화정책을 둘러싼 조선의 정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동인은 1879년 9월에 김옥균(金玉均)과 박영효(朴泳孝)의 밀촉을 받고 일본에 밀항해서 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각국 외교관들과 교제를 가졌으며, 1880년에 제2차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을 따라 귀국했다가 반년도 못 돼 실종된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이 논문에서는 그간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과 일본의 외교문서에 기초해서 이동인이 일본에 체류했을 당시 펼쳤던 비밀외교와 귀국한 뒤의 책동을 상세하게 재구성하고, 개화당의 정치적 목적과 관련해서 그 의미를 해석하고자 했다.
이동인의 비밀외교는 개화당의 정치적 목적과 당시의 조선 정세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개화당은 처음부터 정권장악 및 국정혁신을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로서, 이들은 외세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둘째, 당시 조선의 국내정세를 이해함에 있어 비밀결사 개화당과 집권 개화세력은 그 정치적 목적의 측면에서 구분되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일정하게 개화정책을 추구하기는 하였지만 그 목적은 기본적으로 권력의 현상유지에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권력의 변동을 추구한 개화당과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1882년의 임오군란은 개화파 내에서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개화당)가 분열한 계기가 아니라, 개화당과 집권 개화세력의 권력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발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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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문 요약〉
  2. Ⅰ. 서론
  3. Ⅱ. 밀항(密航)
  4. Ⅲ. 귀국(歸國)
  5. Ⅳ. 실종(失踪)
  6. Ⅴ. 결론
  7. 〈참고문헌〉
  8.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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