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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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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6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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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92 (5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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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이 연구는 도산 안창호의 민족운동을 공화주의 민족혁명운동으로 파악하고 그의 교육운동을 민주시민교육으로 연구하였다. 도산 안창호는 근대 민족지도자 가운데서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공화주의 민족혁명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할 때 민주공화제를 정체로 채택했지만, 민족운동 과정에서 민주공화제를 실천하려 했던 지도자는 소수였다. 도산은 그러한 지도자 가운데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도산의 공화주의 민족혁명운동은 1912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인국민회는 지방회 관할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전부 국민회원이 되게 하고 지정된 의무금을 납부하게 하며 자치제도를 실시하도록 결정하였다. 도산은 해외 한인을 망라하는 공화주의 자치조직으로 대한인국민회를 결성하고, 이를 토대로 일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는 독립운동과 민족국가건설운동을 달성하려 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결실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도산은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도산은 임시정부가 공화주의 민족혁명의 최고 지도부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도산은 민족운동의 발전을 위해 시급한 것은 과거에 신민으로 살았던 습관을 스스로 황제가 되는 습관으로, 따라서 인민 전체가 주권자가 되는 습관으로 개조해야 하는 것이라 역설하였다. 주권자가 되는 습관개조에서 도산은 국민의 개병주의(皆兵主義)·개업주의(皆業主義)·개납주의(皆納主義)를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또한 그는 민족적 통일 없이는 독립을 성취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독립을 달성하자면 반드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망명지에서 임시정부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조성할 필요에서 이상촌건설운동을 전개하였다. 도산은 공화주의 민족혁명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근대적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시민교육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도산은 민족일반을 상대로 한 공화주의 시민교육운동을 민족운동의 중심사업의 하나로 전개하였다. 근대적 민족의식의 각성은 중세적 신민에서 근대적 국민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산은 이를 인격혁명, 민족개조란 용어로 표현하였다. 그 개조의 핵심은 민족 각자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명확히 각성하는 것이고, 이 각성을 바탕으로 민족혁명의 중핵이 될 국민 개병주의(皆兵主義)·개업주의(皆業主義)·개납주의(皆納主義)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산은 이러한 혁신을 위해 생활문화 전반의 개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와 결합해 도산은 공화주의 민족혁명운동의 중견을 육성할 목적으로 1912년 흥사단을 창립하였다. 공화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 각자가 주권자로 사회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 못지않게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다양한 견해를 민주적으로 수렴해 다수가 합의하는 공론을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흥사단은 이러한 공론을 형성하고 통일을 이루어 낼 중추세력과 지도자를 양성하는 보다 고차적이고 강도 높은 교육조직이었다. 도산의 민족교육운동은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시기부터 임시정부 참여 이후까지 계속되었고, 그가 상하이에서 조직한 흥사단 원동위원부는 해방을 맞을 때까지 활동을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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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Ⅰ. 머리말
  2. Ⅱ. 청년기 민족문제 인식과 국권회복운동
  3. Ⅲ. 공화주의 민족혁명론으로의 전환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운동
  4. Ⅳ. 공화주의 시민교육과 흥사단
  5. Ⅴ. 맺음말
  6. 참고문헌
  7.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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