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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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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5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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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은 정조 대 초계문신 申絢(1764~1827)이 御定書 편찬에 참여한 과정을 그의 일기 『實齋日乘』을 통해 복원한 것이다. 신현은 1794년 문과에 급제하여 초계문신 講員으로 선발되었고, 1797년 3월부터 金近淳·曺錫中·洪奭周와 함께 ‘四文臣’으로 지칭되며 鑄字所에서 어정서 편찬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整理儀軌』의 編校를 시작으로 현토 검토와 교정, 抄錄과 편집, 印出 감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근무는 두 사람이 함께 서는 伴直을 기본으로 하되 작업량에 따라 合直과 1인 入直을 오갔으며, 特敎가 없으면 祭官에 차정하지 말라는 명에 따라 제관 차정은 특교로만 이루어졌고, 교정 중에는 본직이 체차되거나 대직 의망이 막히기도 하였다. 편찬 업무가 다른 직무에 앞서도록 운용된 것이다. 1798년 9월에는 초계문신 18인을 初準·再準·三準으로 나누어 교차 검증하게 하였는데, 신현은 字學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교대 시에도 남아 字劃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맡았다.
    신현의 편찬 참여는 그 자신에게 그치지 않았다. 1795년 『史記英選』의 정서에서 신현은 둘째 형 申綽을 代書者로 세웠고, 1798년 『儀禮手圈』의 교감에서는 신현의 형이 『儀禮』를 많이 읽었다는 閣臣 沈象奎의 보고를 계기로 정조가 형제를 지목하여 함께 검토하게 하였으며, 정서 단계에서는 삼형제가 분량을 나누어 썼다. 1799년 신현이 외임에 나가 「御製手圈義例」의 정서가 중단되자 정조는 서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형에게 신현의 서체대로 나머지를 쓰게 하였다.
    형제의 참여는 단계마다 계기가 달랐다. 교감에서는 형들이 읽어 온 『의례』가, 정서에서는 신현의 서체가 계기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쓸 때에는 서체가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했으므로 정조는 신현과 서체가 비슷한 權晙을 짝지었고, 신현에게 맡긴 분량을 형제가 나누어 쓴 것 역시 형제의 서법이 매우 비슷하다는 정조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러한 참여는 제도의 운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작업 국면마다 내려진 국왕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고, 그 판단은 신현이 사문신으로 편찬 실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신현과 그 형제들의 사례에서 초계문신 개인을 매개로 그 가학 역량이 국가 편찬 실무에 쓰일 수 있었던 하나의 구체적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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