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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본 논문에서는 인조 초기 제도개혁론자인 이귀(李貴: 1557~1633)의 제도개혁론을 다룬다. 반정 이후 인조정권은 산적한 과제들을 안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난정 이후 세수확보, 인구파악, 군적충원 등 조선의 기본적인 행정시스템이 붕괴상태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청과의 전쟁위기는 날로 심해져 재정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귀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는 비상한 방법 즉 기존의 법질서나 관행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제도개혁을 통해 나라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귀의 제도개혁안은 주자(朱熹:1130~1200)와 대척점에 있었던 사공파 진량(陳亮:1143~1194)과 문제의식과 해법 차원에서 유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사공파가 아니라 주자의 정치사상을 계승한 나라였으므로 이귀는 사공파의 논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없었다. 만약 조선의 정치가가 주자를 버리고 사공파의 후예로서 자처하였다면 그는 거의 정치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송대 사공파와 유사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다시 주자학의 명분을 통해 자신의 제도개혁론을 정당화하여 조선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의로 만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제도개혁론이 사(私)나 리(利)를 추구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義)와 공(公)을 추구하는 중에 나오게 된 것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사공파가 아니라 주자의 정치사상을 계승한 나라였으므로 이귀는 사공파의 논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없었다. 만약 조선의 정치가가 주자를 버리고 사공파의 후예로서 자처하였다면 그는 거의 정치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송대 사공파와 유사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다시 주자학의 명분을 통해 자신의 제도개혁론을 정당화하여 조선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의로 만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제도개혁론이 사(私)나 리(利)를 추구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義)와 공(公)을 추구하는 중에 나오게 된 것임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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