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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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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0집
발행연도
2008.10
수록면
145 - 18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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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명대 법첩이 조선시대에 전래된 경위와 수용 양상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명대 법첩은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시대 서예 발전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王羲之ㆍ王獻之 父子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二王의 글씨가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지속적인 숭모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각 시기에 따른 명서가의 필적과 서풍의 변화 양상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명대 법첩이 국내에 들어온 경로에 관해서는 문헌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사행을 통해 개인적으로 사들여오거나 사신간의 왕래에 의해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명대에 간행된 법첩은 대부분 별 시차 없이 국내에 들어왔으며, 일정 시기에 유행하거나 크게 반향을 일으켰던 국내의 서풍과도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통해 당시에 명대 법첩이 국내 서풍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명대 법첩은 초기에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간행 사업을 펼쳐 법첩 간행과 보급이 더욱 촉진되는 바탕을 마련했으며, 이후로는 민간이나 개인에 의해 법첩이 摹刻ㆍ刊行되기 시작하면서 법첩의 형태도 이에 따라 다양화되었다. 또한 조선의 서예가들은 법첩을 臨書하여 글씨를 익히는 외에 정밀한 臨木을 만들거나 임본을 다시 돌이나 나무에 새겨 글씨를 익히기 위한 학습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법첩 학습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는 이후로 국내 명서가들의 필적만으로 이루어진 법첩이 간행되는 바탕이 되었으며, 이렇게 간행된 국내의 다양한 법첩들은 당시의 학습서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후대의 다양한 서풍이 형성되는 근간이 되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명대 법첩의 유형과 성격
3. 명대 법첩의 전래와 이에 대한 인식
4. 명대 법첩의 수용 양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도판자료]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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