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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10호
발행연도
2003.8
수록면
315 - 34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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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林希逸(1193년경~1270년경)의 『三子?齋口義』思想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 하는 것은 당시 자료(주로 유학자들의 책)를 조사해보아도 그렇게 분명하지가 않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三子?齋口義』가 「조선의 유학자들 사이에 무난하게 읽혔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종래의 연구에서는 그 논거 제시가 충분하지 못하다. 조선시대의 노장 관련 註解書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三子?齋口義』의 수용에 대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자료로서는 西溪 朴世堂(1629~1703)의 『新註道德經』과 『南華經註解?補』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두 책에 실린 林希逸 관련 사항도 그것이 과연 『三子?齋口義』로부터 직접 인용한 것인지 어떤지는 현재 분명치가 않다. 현재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에 世宗 7年(1425)의 庚子字本 『老子?齋口義』와 『莊子?齋口義』가 있고, 게다가 『列子?齋口義』의 존재도 추정 가능하다. 따라서 세종 7년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 사이에는 『三子?齋口義』가 폭넓게 읽혔다는 것을 일단 인정할 수 있다. 즉 『三子?齋口義』가 庚子字本으로 판각된 이후, 그것이 「覆刻」되기에 이른다. 또한 朝鮮板木 『三子?齋口義』가운데에는, 예컨대 明宗~宣祖年間(1546~1608)의 것으로 보여지는 『句解南華眞經』이 세간에 널리 얽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판본 등의 조사로부터 조선시대에 『三子?齋口義』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에 상당량의 『三子?齋口義』가 간행되어, 유포ㆍ보급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三子?齋口義』를 언급한 유학자, 승려들의 서적을 토대로 해서 「조선의 유학자들 사이에 무난하게 얽혔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결국 이 논문은 향후 이루어질 조선시대의 『三子?齋口義』 수용에 대한 종합적 연구에 대한 하나의 시론인 셈이다.

목차

【요약문】
1. はじめに
2. 問題の所在: 「『三子?齋口義』が朝鮮にぉいて普通に讀まれた」という證據はあるか?
3. 「『三子?齋口義』が朝鮮にぉいて普通に讀まれた」證據について(一): その朝鮮板本の調査から
4. 「『三子?齋口義』が朝鮮にぉいて普通に讀まれた」證據について(二); 朝鮮の老莊關聯註解書以外の資料から
5. まとめ
【참고문헌】
【中文提要】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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