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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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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치정보학회 정치정보연구 정치정보연구 제7권 제2호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208 - 245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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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호남과 직접적인 인연을 갖게된 것은 공무수행을 위해 1591년 2월 정읍 현감으로 부임하면서이다. 이어 절충장군으로 만포점사. 진도군수를 지내고 47세에 전라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통제사를 지내고 1597년 1월27일 주변의 모함으로 구속되어 서울로 압송, 동년 4월1일 방면될 때 까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해안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트라팔가르해전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영국의 넬슨제독에 버금가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침략을 분쇄하였던 것과 더불어 개인적인 인품 및 애국심과 救國의 사명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이러한 자질을 발휘 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호남 사람들의 호국사상과 더불어 물질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특히 이 고장 선비출신인 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김덕령 등 의병장군들은 가족과 제자들을 규합하여 구국의병 전쟁에 참여하여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그 이외에 수많은 의병장들이 출현하여 권율의 행주대첩에 참전 및 지원하였으며, 경상도를 중심으로 궐기한 곽재우 의병장과 여러 군관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호남은 고려 항몽 전쟁과 임진.정유왜란 그리고 일제강점기 같은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생명과 재산을 바치어 나라를 구하였고 명분 없는 조선개국에 반대한 이른바 두문동 절신(絶信)들의 의리와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4대士禍)를 당하고도 굽힐 줄 모르는 기백과 절개는 세월에도 묻히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백의민족의 정기와 국가기강을 지켜오는 활화산이며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임진왜란 기간동안 이순신의 해전승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사들의 애국 행적만을 선별하여 고찰하였으며, 그에게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호남사람들의 현직 군관, 고을 수령, 그리고 의병장들과 의병참여자 및 군량지원 또는 운곡장(運穀將), 사천전투에서 시작하여 적을 궤멸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병기인 거북선을 비롯한 병기제조 등에 참여하여 승전으로 이끈 인사들의 애국 행적을 주요 고찰 대상으로 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릿말
Ⅱ. 이순신의 약력과 임진왜란
Ⅲ. 해전에서 호남인의 애국정신
Ⅳ. 호남 의병들의 특성
Ⅴ. 맺는 말
《참고 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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