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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성산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0 여름호 제33권 제2호 (통권 119호)
발행연도
2010.6
수록면
129 - 16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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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기 조선에서 유행했던 碑學 연구의 의의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으로 金石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그러한 가운데 古碑에 대한 연구들이 증대하였다. 비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阮元의 「南北書派論」과 「北碑南帖論」이라는 글이 나오고, 이어 包世臣의 『藝舟雙楫』, 康有爲의 『廣藝舟雙楫』이 나오면서부터였다. 고증학 범위 안에 있었던 비학이 書體의 문제와 본격적으로 결합하면서 대중화되었던 것은 이들의 논설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랑캐로 폄하되던 北魏문화가 재조명되었고, 나아가 중국의 고대문화가 구체적인 물건으로 증명되었다. 이러한 고비에 대한 관심은 조선에도 전해져 17세기 후반 이래로 많은 지식인들이 비학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중요한 발전은 阮元등의 이론을 수용한 金正喜에 의해 일어났다. 김정희는 신라와 고려비에 담긴 北碑的인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를 중국문화와 연계하여 파악하였다. 중국과 중화문화를 과거에 공유했다는 의식을 갖는 데 신라와 고려비는 중요한 매개였다. 중화문화의 원형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고비가 소중하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에는 현재 없고 조선과 일본에는 남아 있는 고대 중화문화의 원형을 찾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즉 고비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동아시아에서 확산되었던 同文 의식과 관련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碑學은 서세동점 과정에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 지식인들 사이에서 어떠한 문화적ㆍ학술적 교류와 일체감이 형성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淸末 碑學의 발흥과 의의
Ⅲ. 17세기-18세기 후반 碑學의 전개
Ⅳ. 19세기 전반 碑學의 발전: 金正喜의 碑學 연구
Ⅴ. 碑學 연구와 朝鮮學: 공유된 ‘중화’와 ‘과거’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참고문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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