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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중국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9
발행연도
2010.9
수록면
57 - 9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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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비의 건립연대의 기준은 辛巳年이라는 干支이다. 그리고 1행 6번째 글자는 ‘只’자가 아니라 ‘中’자라는 사실과 2행 11번째 글자는 ‘德’자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사실 및 六部에 壹伐이라는 새로운 관명이 보인다는 사실 등에 근거하면 본 비의 건립 연대는 441년이 된다.
본 비의 내용은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보여준다. 먼저 중앙에서 교를 내리자 몇 사람이 분쟁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밝힌 후 중앙에서는 使人을 파견하여 분쟁 지역 출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빼앗은 자인 豆智沙干支宮 등에게 빼앗은 것을 빼앗긴 자인 牟旦伐喙 作民沙 干支에게 되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리고 차후 이 판결에 이의를 달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중성리비는 마립간 시기에 신라의 육부체제 운영 모습을 보여준다. 육부체제는 나물마립간대에 성립되었고 눌지마립간대에 오면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탁부와 사탁부 중심의 운영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아간지, 사간지 등의 관등은 탁부와 사탁부 출신자만이 지닐 수 있었고 나머지 4부의 長은 干支를 칭하였다. 본 비에는 부 간지 휘하에 두어진 일벌이 보이는데 이를 외위 조직과 연계시켜 보면 일벌 이외에도 일척, 피일, 아척 등도 두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관명은 외위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部官으로 부르기로 한다.
부의 내부 분화의 진전은 부의 유력자들의 수를 증가시켰고 이들 상호간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4부에 한해 간지를 분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간지는 重간지, 三干支등으로 분화ㆍ격상되었으며 봉평비에서 보듯이 오간지까지 분화되었다.
마립간 시기 신라의 영역은 왕의 직할지와 부의 干支가 주관하는 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왕의 직할지와 부의 간지가 주관하는 촌에는 村干支-壹金知라는 지배조직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를 村干으로 부를 수 있다. 왕은 자신의 직할지에는 도사를 파견하여 지배하였고 여타 지역은 부의 간지가 部官을 통해 그 지역의 일을 처리하였다. 이때 촌간은 도사나 부관이 각 지역을 지배하는데 보좌역할을 하였다.
봉평비단계는 신라의 관등이 경위와 외위로 정비된 것을 보여준다. 경위는 종래의 아간지, 나마, 사지 등을 분화ㆍ격상시키는 방법과 육부의 장 아래에 두어졌던 일벌, 일척, 피일 등에 간지를 붙여 격상시키는 방법으로 정비되었다. 외위 역시 두 방향에서 정비되었다. 하나는 육부 간지 아래에 있던 일벌-일척-피일 등을 지방민이 지니는 관등으로 바꾸어 격하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장을 지칭하는 간지를 분화ㆍ격상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경위 17관등과 외위 11관등이 정비된 시기는 521년의 사실을 전하는 『양서』, 신라전에 子賁旱支(이벌찬)와 齊旱支(잡찬)가 보이고 있는 사실과 연계시켜 볼 때 냉수리비가 만들어진 503년에서 521년 사이로 볼 수 있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비문의 판독과 건립연대
Ⅲ. 분쟁 처리 절차와 증거
Ⅳ. 六部體制의 운영과 지방 지배
Ⅴ. 경위-외위체계의 정비 방향 -맺음말에 대신하여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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