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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훈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1호
발행연도
2008.5
수록면
9 - 4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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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德墓誌銘은 아직까지 발표된 적이 없는 高句麗遺民 관련 묘지명이다.
묘지명에 의하면 高德의 조상은 645년경에 庸 太宗이 고구려의 요동성을 함락하였을 때, 당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당태종의 특사를 받아 방면되었는데, 군사적 재능으로 인하여 당의 궁궐에서 禁軍으로 복무하였다. 그러나 당초 포로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 지위는 높지 않았다. 祖父와 父의 영향을 받아, 禁軍의 하급관리로 근무하던 高德이 출세한 것은 710년에 唐玄宗이 일으킨 쿠데타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高德은 그 공로로 “唐元功臣”에 봉해졌고, 그 후 출세의 길을 달렸다. 折衝都尉를 오랫동안 역임하였고, 右龍武軍翊府中郞을 거쳐 최후에는 上柱國에까지 이르렀다.
고덕묘지명에는 고구려인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비문에 기록된 조상의 기원과 고구려에 온 시기와 唐나라에 들어간 시기 등 여러 가지 항목을 검토해 본 결과, 고덕의 조상에 대한 기록은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덕은 묘지명에서 그 출자를 渤海高氏라고 하였는데, 이는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증손녀로서 고덕과 비슷한 시기에 죽었던 「高氏夫人墓誌銘」에 보이는 기재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시 고구려유민의 이러한 묘지의 기록방식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은 소수의 高門士族이 정치적ㆍ사회적ㆍ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던 사회였다. 따라서 이민족 출신의 군주와 유력자들은 그들의 조상의 기원을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이나 유명한 인물에 의탁하여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고, 고구려 유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러한 풍조의 영향 하에 그들의 출자를 당시 북방의 高門士族인 渤海高氏에 의탁하였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하여 渤海高氏로 표현된 다수의 高句麗 高氏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이들 高句麗 高氏들에 대하여 이제까지 진행된 중국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소개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예를 통하여 묘비명의 주인공인 高德이 고구려출신이라는 것을 확증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판독 및 해석
3. 高德의 출자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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