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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영준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물사연구회 한국인물사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12호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231 - 25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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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의 남한산성에 대한 연구는 주로 山城의 복원을 위한 발굴성과이거나 축성 단계별 공사 담당자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정작 축성의 주역이었던 승려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한산성의 축성이 대규모의 국가토목공사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시의 기술력을 총동원하여야 하는 일이었고, 이때 동원된 승군이 築城役에서 단순히 노동력만을 제공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양란 중에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남한산성 축성은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役事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벽암 각성은 남한산성 축성의 주역으로써 八道都摠攝의 소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築城役에 동원된 僧匠과 僧軍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산성을 축성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축성기간 단축과 민생을 보호하는 이중적 효과를 거둠과 동시에 불교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대폭 수정하는 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남한산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 시각에서 벗어나 축성의 주역이었던 각성과 승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통해 17세기 불교가 지녔던 종교적ㆍ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의 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벽암 각성의 구국활동과 남한산성 축성
Ⅲ. 벽암 각성의 사원 중창과 17세기 불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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