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남의현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29집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59 - 183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5세기는 明나라가 대외팽창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5세기를 이야기 할 때 중국의 관점을 자신도 모르게 수용하며 明나라의 팽창에 의해 북방의 몽골 세력이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더구나 明나라의 역사에 가려 몽골의 역사가 주요한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몽골인이 연구한 몽골사를 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永樂帝는 15세기 靖難의 變을 통해 정권을 차지하면서 그의 통치시기(1403~1424)동안 몽골과 만주로의 진출을 도모하였다. 鄭和出使와 같은 해양진출을 시도하는 동시에, 5차 몽골친정, 遼東都司의 정비와 奴兒干都司의 설치를 통한 요동지배와 팽창시도, 여진을 관할하기 위한 衛所 설치 등은 명나라가 역동적인 15세기를 만들어 가려는 모습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5세기 초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영락제의 변경정책은 그의 사후 지속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평가에서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의 사후 명나라의 변경 정책은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였고 이후 어느 황제도 더 이상 역동적인 팽창을 시도할 수 없었다. 수세적인 방어로의 전환은 북방민족에 대한 완벽한 대응책이 될 수 없었다. 인구의 유출과 군사들의 도망과 반란 등으로 명나라는 오히려 북부의 몽골과 동쪽 여진의 성장에 의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변경에서 전개되면서 만리장성과 요동변장의 수축이라는 방어벽 축조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15세기는 새롭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15세기 명나라는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만들려는 가장 왕성한 시도로 시작되었지만 그리고 이를 통해 질서의 재편을 구상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지속시키지 못하고 좌절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동아시아사 연구에서 15세기에 대한 평가가 ①명ㆍ몽골과 명ㆍ여진을 명과 종속관계에서 보았던 시각에 대한 재검토, ② 元ㆍ明 交替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 ③ 조선과 여진관계의 재정립, ④조선과 명의 국경선과 국경지대에 대한 재설정 등 근세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대한 새로운 역사상이 보편적이고 객관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목차

〈국문초록〉
1. 序論
2. 15세기 몽골정세와 명의 외교단절
3. 여진지역으로의 팽창시도와 한계
4. 조선ㆍ여진관계의 재인식
5.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001-000463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