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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여태천 (동덕여대)
저널정보
한국비평문학회 비평문학 비평문학 제41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177 - 20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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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이후 국민문학파, 혹은 민요시파로 불렸던 주요한, 김억, 최남선 등은 민요와 시조를 그 대상으로 삼아 근대적인 조선의 시가를 창출하려고 했다. 서양문학과 일본문학을 통해 근대시의 이상에 심취했던 이들이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자유시를 부정하고 정형시형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김억이 보여준 일련의 활동은, 조선시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었다. 그 질문은 서구의 근대적 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그것을 근대 민족시론의 형성과정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보여준 격조시형으로의 급격한 변모의 과정과 자기부정의 이면에는 조선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놓여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억은 누구보다도 문학어로서 조선어에 대해 민감했으며, 또한 구체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김억이 강조한 것은 언어의 음악성이었는데, 이 음악성은 조선말에 대한, 조선시가에 대한 고민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조선시가의 형식이 이러한 조선어의 특성에 기초해야 함을 주장했다. 또한 국민적 시가의 조건으로 언어의 향토성과 언어의 음조미를 내세웠다. 이와 같은 생각은 모두 조선어의 특징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이해 위에서 도출되었다. 김억은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을 토대로 격조시형으로서의 조선시가의 형식을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 초록
1. 문제제기
2. 음악성의 강조와 조선어 인식
3. 조선시가 형식에 대한 고민
4. 국민적 시가의 조건: 향토성과 음조미
5. 격조시형의 실체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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