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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철웅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0집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25 - 5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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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국왕의 후계자인 태자는 왕권 바로 아래의 2인자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겨져 ‘儲貳’, ‘國本’ 등으로 지칭되었다. 따라서 태자 책봉은 현 국왕을 이을 다음 국왕을 천명한다는 점에서 왕위의 안정적인 계승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었다. 이에 「元子誕生賀儀」, 「王太子加元服儀」, 「冊王太子儀」, 「王太子稱名立府儀」 등 태자 관련 의례를 통해 元子가 어떤 과정을 거쳐 王太子에 책봉되는지에 대해 규명해 보았다.
국왕은 元子가 태어나면 3일 동안 視事를 보지 않았고 직접 원자 탄생을 景靈殿에 고했다. 그리고 「元子誕生賀儀」의 하나로 捲草禮와 開福神 醮禮 등을 거행하였다. 원자의 책봉 의식은 국왕과 재추, 그리고 문무 백관이 참여하여 대관전에서 거행되었다. 원자는 책봉례에서 ‘王太子’로 책봉되고 조서, 책문, 인장 등의 세 가지 물건을 받음으로서 그 지위를 확인받았다. ‘王太子’로 책봉 받은 원자는 흔히 太子로 불렸으며 원 간섭기 이후에는 ‘王世子’에 책봉되고 일반적으로 世子로 지칭되었다. 한편 왕태자의 책봉 나이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고려전기는 대체로 7~11살 정도에 책봉이 이루어졌고, 무신집권기에는 20대 전후, 원 간섭기에는 책봉을 받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왕태자로 책봉되기 전에 먼저 太子府를 두었는데, 이것은 왕태자의 지위를 안정시키지 위한 조처였다.
왕태자의 관례는 고려전기에는 12살 이후에, 후기에는 16~21살에 거행되어 일정하지 않았다. 관례 후에 책봉이 행해지기도 하고 관례와 동시에 책봉례가 거행되기도 하여 양자의 선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봉례 후에 관례가 거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책봉례 이후에 책봉과 관련하여 사면, 왕태자 이름의 改名, 왕태자 생일의 절일 지정과 축하 등의 후속 조처가 뒤따랐다. 특히 왕태자는 따로 인재를 선발하여 東宮의 관원으로 임명하였다. 이것은 왕태자의 정치적 안정과 위상을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궁의 속관들은 왕태자의 측근 세력을 형성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태자 관련 의례의 검토
Ⅲ. 태자 책봉의 실제와 내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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