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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미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5호
발행연도
2014.7
수록면
263 - 28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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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제11대 왕인 문종은 제8대 왕인 현종의 아들이자, 제10대 왕인 정종의 異母弟이다. 정종은 자신의 아들 4명이 있었지만 아우인 문종에게 선위하였다. 문종이 즉위한 배경은 먼저 訓要十條에서 엿볼 수 있다. 태조는 訓要十條에서 장자 이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고려 초기에 어린 아들이 있을 경우 장성한 아우에게 선위하는 전례가 있었으며, 정종과 문종의 혈연적 배경이 동일하였다. 또한 당시 고려인들도 前王의 아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런 배경 하에서 문종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문종은 정치적인 세력을 가지고 국정을 파악한 상태에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국왕으로서의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종의 아들이 장성함에 따라 왕권의 불안 요소가 되거나 향후 왕위계승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문종은 자신의 아들을 왕위계승자로 선정하여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왕위계승상의 분란을 없애고자 하였다.
왕태자 책봉 이후 문종은 동궁관을 확대 정비하고 여러 태자 관련 의례를 시행하였다. 동궁관제는 1068년에 제도적인 완비를 보았다. 이때 정비된 동궁관은 중앙 관부의 축소판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1054년의 거행된 태자 책봉 의례는 규정된 절차를 준수하며 시행되었으며, 책봉례 이후에 1056년에 왕태자의 長興節을 축하하는 의례가 시행되었고, 1064년에는 태자 혼인 의례가 거행되어 『고려사』 예지에 규정된 태자 의례가 실시되었다.
또한 문종은 왕태자 책봉을 국외에 알렸으며, 고려의 태자는 거란으로부터 3번 책봉을 받아 권위를 높였다. 이러한 여러 조치들은 국왕 다음가는 권위자로서의 태자의 위상을 강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태자는 문종 말년에 거동이 불편한 문종을 대신하여 國事에 참여하여 국왕 다음의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문종의 즉위와 王太子 冊封의 배경
3. 東宮官과 태자 관련 儀禮의 정비
4. 왕태자 책봉의 정치적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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