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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수 (세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37집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15 - 14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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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668년 연행에 나섰던 서계 박세당이 중형인 박세견에게 띄운 두 통의 사행 서신을 분석하는 절차로부터 개진되었다. 박세당은 사행 도중에 각기 북경과 산해관에서 중형에게 서신을 올렸던바, 편지의 내용은 서계가 남긴 『서계연록』 및 『사연록』과 대부분 일치하는 맥락이면서, 동시에 양 종 연행록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측면도 존재한다. 특히 박세당이 느꼈던 북경에 대한 인상과 그곳 사족들에 대한 평가, 사절단 내부의 동정에 관한 정보, 사행 노정상의 경물에 대한 소회 등은 두 종류의 연행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용으로, 사행 서신의 자료적 가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편 박세당은 청에서 귀국한 직후에 곧장 양주의 수락산 기슭의 석천동으로 퇴은을 감행했으나, 은둔 이후에도 그가 소론계 내부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위상은 심대한 수준이었다. 특히 박세당은 청으로 사행에 나서는 소론계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부연시로 전별을 표하는 계기를 빌려서, 자신의 대청 인식을 전승하는 통로로 삼기도 하였다. 즉, 박세당은 남구만·최석정·최규서·이홍적·이덕성·이탄·박필성 등과 같은 인사들에게 강개한 어조로 ‘화이혼속’ 격으로 변모한 중화 문명의 현주소를 누차 학습시켰던 것이다. 박세당은 의로운 역사적 사건과 결부된 주요 공간물들을 환기하면서, 당시 중원의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특히 박세당의 부연시 속에서 화표주는 한대 정령위의 화신인 학을 작품 속으로 호명케 해주는 상관물로 설정되어 있다. 박세당은 요동 구성과 신성 계열, 곧 원형 모티브로서의 화·이의 분기점을 증명해 줄 시적 장치로써 신선으로 화한 정령위의 화신인 학을 누차 요청했던 것이다. 물론 박세당의 경우 시대에 따라 풍속도 변모할 수밖에 없다는 자체적 정당화 논리를 개발하였기 에, 그가 창작한 부연시 속에 등장한 자객과 의인들의 의분이 復讐雪恥論으로 연장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시적 창작 세계와 현실적 세계를 애써 변별코자 노력했던 박세당의 태도는 호곡 남용익의 경우와는 단연 대비되는 처사였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仲兄에게 띄운 사행 서신
3. 赴燕詩의 특징적인 양상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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