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1 겨울호 제34권 제4호 (통권 125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95 - 240 (4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공민왕대의 한-중 간(고려-원 간) 교역 여건은 이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강절행성 및 요양행성으로부터의 방문 재개, 그리고 그에 수반된 상인들의 고려 재방문 등은 고려-원 간 교역을 중개할 중국 측 무역주체들의 고려 왕래를 의미했다는 점에서, 분명 공민왕의 교역정책에는 유리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재개된 기황후세력의 고려물자 징발, 그리고 1350년대 전반 원보초의 급격한 가치하락 및 퇴출 등은 공민왕의 무역정책에 심각한 악재가 될 다분히 부정적 정황이었다. 이 두 가지 긍정적ㆍ부정적 정황 중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 탓에 공민왕은 적극적인 교역정책을 구사할 여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강남행성이든 요양행성이든 중국 측의 적극적인 교류 제의에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된다.
그러나 공민왕이 대원, 대중국 교역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가 확곽첩목아와의 교류를 통해 활로를 타개해나가려 한 모습에서 그를 확인할 수 있다. 확곽첩목아는 공민왕으로서는 기황후세력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통로였던 동시에, 기황후세력과의 개선된 관계를 기반으로 공민왕이 원내 대도지역 고려인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접촉할 창구였다. 한편 이후 원의 몰락으로 그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자, 공민왕은 명과도 다양한 형태의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시도들이 답보상태를 보이는 한편으로, 고려 민간상인들 및 관료, 권세가들의 대원, 대명 사교역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공민왕대의 대외교역 정책은 13세기 후반 이래 100여 년 가까이 지속돼온 고려-원 간 제국과의 교류가 정부주도 교역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정황이라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공민왕대 대외교역의 제 여건
Ⅲ. 공민왕대 정부차원 대외교역의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참고문헌 (2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151-001308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