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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채연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1집
발행연도
2012.4
수록면
183 - 22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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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통신사행에 참여한 사행원들 가운데 사절의 책임자로서 사행을 이끄는 三使에 주목하고, 삼사의 선발을 통해 조선후기 대일정책의 일환으로서 통신사가 능동적으로 파견된 외교사절임을 밝히고자 한다.
삼사는 통신사와 동격으로 간주될 만큼 사절의 책임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사행 준비에서도 가장 먼저 선발되었으며, 사행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여 대일외교의 분위기를 익혔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삼사의 관력에 대한 검토로 이어졌으며, 삼사의 선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대일업무 체계에서 구심적 기관이었던 비변사와 예조를 중심으로 삼사의 관력을 살펴본 결과, 삼사에는 비변사나 예조관원을 역임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시기는 대체로 1646년~1762년 사이에 집중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1655년 사행을 기점으로 비변사나 예조관원과 같이 대일정책의 의결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사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삼사의 선발양상이 변화하는 데에는 조선의 대일정책의 변화에서 기인하였다. 대일무역의 전개상에서 오는 폐단이 커지면서 조선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밀무역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1652년에는 ‘禁散人各房約條’가 마련되었다. 한편 조선으로 도항해 오는 무역선의 수가 증가하면서, 영남지역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1655년 통신사의 파견을 통해 무역선의 추가를 막고, 무역선을 매개로 하여 대마도의 통제를 꾀하였다.
이러한 대일외교상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이 대륙정세의 변화 추이에 따른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대일정책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 크게 가시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조?일 관계에서 안착된 것이 1682년 사행 이후이며, 조선이 양국관계를 주도하는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계해?신미 약조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따라서 1655년 통신사행이 조선 후기 대일외교사의 전개에서 가지는 의미는 명확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와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통신사행의 준비와 삼사의 역할
3. 파견 이전의 삼사의 관료 경험
4. 삼사의 선발을 통해 본 대일외교의 성격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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