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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7집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3 - 34 (32page)
DOI
10.18496/kjhr.2014.04.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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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년 가마쿠라 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뜨리는 조큐(承久)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후 일본해적은 고려를 대상으로 약탈하는 왜구로 전환하였다. 고려는 가마쿠라 막부에 왜구금지 사신을 파견하였고, 다자이후로부터 매우 우호적인 첩장을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고려의 왜구금지 외교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이어 발발한 간노죠란(觀應擾亂)의 영향으로 고려에 왜구가 더욱 자주 출몰하였다. 고려는 막부와 대마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왜구금지 외교를 전개하였다. 막부와 대마도는 고려의 왜구금지 사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따라서 막부와 대마도의 고려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무로마치기 왜구’가 바다 건너 고려에 출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조선 개국 직후 ‘무로마치기 왜구’의 출몰은 대일본 외교의 최대 현안이었다. 조선은 무로마치 막부, 다자이후,대마도, 슈고(守護)세력 등과 수시로 사신을 주고받으며 다원적인 왜구금지 외교를 시도하였다. 또 조선은 삼포(三浦)를 열고 조선에 투화한 왜인에게 생활 안정을 제공해 주는 유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같은 조선의 대왜인 정책은 조선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국내안정에 필요한 평화유지비용이었으며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고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범국가적 외교행위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가마쿠라기 왜구’의 고려 출현과 왜구금지(禁寇) 외교의 출발
Ⅲ. 고려 말 ‘무로마치기 왜구’의 창궐과 왜구금지 외교
Ⅳ. 조선 초 ‘무로마치기 왜구’와 강ㆍ온의 대일외교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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