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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 (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31집
발행연도
2008.12
수록면
43 - 8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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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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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왜구〉는 경인년(1350)이후 31년 동안 침구해온 왜구 중 최대규모였다. 진포구에서 고려군의 화포 공격을 받아 타고 돌아갈 배가 불타버리자, 왜구들은 이후 수 개 월 동안 고려 내륙을 전전하면서 고려 사회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와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기존의 일본 측 연구는 이 〈경신년 왜구〉에 관한 고려사 의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고찰을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소위 〈고려 말 왜구=고려·조선인 주체〉설 내지는 〈고려 말 왜구=고려·일본인 연합〉설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경신년 왜구〉와 관련해, 최초로 일본 측 문헌 사료에 입각해, 그 실체와 침구 배경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그 결과 〈경신년 왜구〉는 규슈탄다이 이마가와 료슌의, 예상되는 공격에 대하여 규슈의 남조 세력이, 다카기·아마쿠사 일대의 선박을 대피시키기 위해, 그리고 남조의 본거지 기쿠치 일대가 포위당한 상황 속에서 병량미를 얻기 위해 침구했던 것임을 밝혔다. 그러한 〈경신년 왜구〉 중에는, 다카기·아마쿠사 지역의 수군 세력은 물론, 규슈 최남단의 오오스미 지역의 호족 네지메씨 주변의 남조 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상과 같은 고찰을 통해서,〈경신년 왜구〉를 근거로 하여 제기된 소위 〈왜구=고려·조선인 주체〉설 내지 〈왜구=고려·일본인 연합〉설은 입론(立論)부터 잘못되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경신년 왜구〉 역시, 고려 말의 왜구가 규슈 지역의 무장 세력이 병량미의 확보와 일시적인 도피를 목적으로 침구해간 것이라는 필자의 일관된 견해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임을 밝혔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기존설의 검토
3. 관련 사료의 검토
4. 다카기(高?)·아마쿠사(天草)의 지정학적 위치
5. 경신년(1380)을 전후한 규슈 정세
6. 려일간의 외교 교섭과 〈경신년 왜구〉의 정보
7. 결론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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