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 (방송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26집
발행연도
2007.4
수록면
95 - 146 (5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고려 공민왕이 15년(1366)에 일본에 왜구의 금압을 요청하기 위해 파견한 외교 사절은 왜구가 발생한 지 무려 17년이나 뒤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고려 조정이 17년 동안이나 사절 파견을 자제한 것은 원명 교체기의 혼란과 연동된 국내외의 혼란을 보이지 않기 위해 취해진 일관된 외교 정책에 입각한 것이었다.
또한 그 사절 파견은 원나라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고려 조정의 단독적인 의지에 따른 것으로, 고려는 거짓으로 원나라 황제의 존재를 이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고려의 의도는 적중해 당시 일본 조정은 약 1세기 전에 몽고와 고려 연합군이 두 차례나 침공해 온 사실을 떠올려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 결과 일본은 그때까지 소극적이었던 규슈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새로운 규슈탄다이 이마가와 료슌의 파견과 그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체제를 갖추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민왕 15년(1366)의 사절 파견은 소강상태에 있었던 남북조 내란을 단숨에 급진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禁倭使節 파견 지체의 배경
3. 금왜사절 파견의 實像과 意義
4. 결론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49-001669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