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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7집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303 - 32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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蘆溪 朴仁老(1561-1642)의 「蘆溪歌」가 1636년 봄에 창작되었다는 것은 작품의 첫머리에 거의 확실하게 명시되어 있으므로 의심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계가」가 1627년 이전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설이 이미 오래 전에 학계에 제기된 바 있고, 그 동안 이에 대한 이렇다 할 확실한 반론이 없었으므로 「노계가」의 창작 시기는 아직도 자못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다. 「노계가」가 1627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주장의 근거는 아주 간단하다.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노계가」가 노계의 아들들 가운데서 최소한 한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지어진 것이 분명한데, 노계 집안의 족보에 의하면 노계의 아들 가운데 가장 늦게 별세한 朴敬立의 별세 연도가 1627년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노계의 아들 박경립이 1627년에 별세했다는 족보의 기록은 오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가 1631년에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11가지의 폐단을 바로 잡아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장문의 상소문을 仁祖에게 올렸음이 확인되고 있고, 1942년에 별세한 노계를 위하여 3년 동안 侍墓살이를 했을 뿐만 아니라, 1649년에 별세한 인조를 위해서도 3년 동안 喪服을 입었다는 기록들이 두루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651년에도 박경립이 당시의 폐단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되는 상소문을 올렸음이 확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편찬한 노계 집안의 족보에는 그가 1661년에 별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박경립의 별세 연도가 1627년이라는 족보의 기록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며, 따라서 「노계가」의 창작시기는 작품의 첫머리에 있는 그대로 1636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노계가」가 1636년에 지어졌다고 하여 노계가 그해에 처음으로 蘆洲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각종 자료를 종합해 볼 때 노계는 그 이전에도 노주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고향 도천으로 되돌아온 적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에 따라 기록이 다르므로 그가 처음 노주에 들어간 시기가 언제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노계의 만년기가 아니라 중년기의 어느 시점으로 판단된다. 요컨대 노계는 두 번에 걸쳐 노주에서 은거 생활을 했으며, 「노계가」는 노계가 두 번째 노주에 들어갈 때 지은 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노계가」의 창작 시기
3. 노계의 노주 은둔 시기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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