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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지윤 (국립고궁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1·272號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5 - 4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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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子文기법은 금속표면에 끝부분이 둥글게 움푹 파인 釘을 망치로 두드려 작은 음각 圓文을 표현하는 금속공예기법이다. 이 기법은 기원전부터 고대 서아시아 등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어자문기법은 7세기 이전까지 금속기의 부분 장식으로 이용되다가 唐代 金銀器에서 주문양을 돋보이게 하는 바탕 장식[地文]으로 성행하였다. ‘魚子’는 작은 원문을 수없이 늘어놓은 모습이 물고기 알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일본正倉院文書의 기록(760)에 근거하여 현재 보편적으로 불리고 있다.
어자문기법은 삼국시대에 문양의 일부, 또는 테두리를 장식히는 연주문 형태로 고급 威勢品과 金銅小形佛 등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탕 장식으로 사용된 시기는 唐과 활발한 교섭을 하였던 7세기 전반 경으로 왕실사찰에서 출토된 舍利器에서 정착되어 가는 초기단계를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어자문은 경주를 중심으로 제작된 불교공예품과 일부 장식품에 본격적으로 시문되었다.
고려시대에 어자문기법은삼국·통일신라공예기술의 전통을 기반으로 北宋·遼등과의 대외교섭을 통해 11세기에서 12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특히 11세기에 요와의 밀접한 관계는 어자문 금속공예품의 제작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고려전기에 官匠의 제도화를 토대로 한 官營手工業의 체계적인 생산체제는 어자문 금속공예품의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어자문 금속공예품은 왕실과 귀족층 등으로 수요가 확산되면서 기명류·화장용구·장신구등의 일상공예품에 폭넓게 제작되었다. 어자문기법은 대표적인 주문양 기법인 線彫기법과 打出기법 등과의 결합에 따라서 시문수법에 영향을 받는다. 선조기법과 함께 장식된 어자문기법은 선조기법과 대등하게 음각된 원문 하나하나가 육안으로 분명하게 확인된다. 어자문기법의 유형은 성기거나 불규칙적인 유형과 치밀하고 정연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통일신라 말의 경향을 이어 제작된 고려 초의 불교공예품에서 자주 보이며, 후자는 화장용구와 장신구 등이 해당된다. 高浮彫 타출기법과 결합된 어자문기법은 빽빽하게 타출한 꽃문양의 사이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알 같이 시문되었다. 어자문은 凹凸의 차이에 따른 빛의 반사와 광택효과로 금속질감에 변화를 주어, 화려함을 더하고 주문양의 입체감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처럼 금속공예품의 全面을 가득 채운 고부조 타출기법과 질서정연하고 빈틈없는 어자문기법의 조합은, 요대 금은기에서도 볼 수 없는 고려만의 독자적인 특징으로서 늦어도 112세기를 下限으로 성행하였다고 생각된다.
본 논문은 고려시대 어자문기법 연구의 始發點으로서, 한국에 전래된 어자문기법의 전개과정과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고려시대 어자문 금속공예품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살펴보는 데 의의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魚子文기법의 기원과 전개
Ⅲ. 고려시대 魚子文 금속공예품의 유행과 발전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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