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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기영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2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169 - 20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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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복원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생애를 살았다. 1882년 함경도 북청에서 출생한 그의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02년 대한제국의 장교로 임관하여 5년을 근무하였다. 이후 일본에서 7년간 유학하며 경응의숙 이재과에서 수학하였고, 이어 미국에 유학하여 19년을 머물렀다. 그는 미국 서부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40의 나이에 버지니아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를 마치고 그는 노스웨스턴대학에 여러 해 재학하였는데, ‘특별생’이라는 자격이었다. 그는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 거주하면서 사회과학연구회라는 단체와 무관하지 않게 지냈던 것 같다. 그 단체는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복원은 부분적으로 동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아무튼 그는 1933년 1월 미국을 떠나 중국에 나타나는데, 1933년 4월 전후부터 1935년 10월까지 의열단의 김원봉이 주도하던 조선혁명간부학교의 교관으로 재임하였다. 1935년 7월 역시 김원봉이 주도한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였다가, 김원봉을 반대하던 이청천 계열에 참여하였다. 결국 그는 민족혁명당을 이탈하여 이청천이 주도한 조선혁명당에 참여하게 되는데, 의열단이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던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이복원은 조선혁명당을 거쳐 한국독립당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임시의정원의원과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참모나 지대 부지대장 등을 역임하는데, 군사 전문가였던 그는 대개 지휘관이 아닌 군사학 편찬 관련 직책과 참모직을 맡았다. 아울러 미국 유학 이래 중경에서도 기독교를 신앙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복원은 온유하고 군인에 맞는 체격은 아니었으나, 평생을 한국의 군인으로 살기 위하여 자신을 던진 인물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미국유학을 하여 군사학교를 마쳤으며, 중국에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된 조국에서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가 독립운동을 위하여 바친 긴 행로에 비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기간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오직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점은, 특별히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목차

1. 머리말
2. 대한제국 무관에서 일본유학생으로
3. 미국에서 군사학 전공
4. 군사학전문가로 재중독립운동 참여
5. 맺음말
국문요약
참고문헌
영문요약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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