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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문호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36輯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57 - 18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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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周 建德 3년(574), 武帝는 불교사원과 경전의 파괴, 비구와 비구니의 환속, 사원 재산의 몰수와 그 몰수 재산의 왕공 귀족 및 관료들에게의 분배를 명령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三武一宗의 법난 중 하나인 북주 武帝朝의 廢佛事件이다.
후대의 불교사가들은 당시 무제를 사주하여 법난을 일으킨 주동 인물로 환속승 위원숭과 도사 張賓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출세 지향적 성향이 강했던 위원숭과 더불어 儒·佛·道 삼교의 先·後 문제가 첨예한 정치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당시에 도사 장빈이 도교를 위해 불교를 폄훼하는 주장이 법난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후대 불교사가들 대부분이 북주 법난의 책임을 무제와 장빈 두 사람에게 전가하면서 위원숭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필자는 이들 불교사가들이 위원숭을 감싸는 듯한 경향을 보인 원인이 그의 주장 혹은 언행 등에 근거하여 그가 북주 법난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결과는 아닐까 하는 관점에서 위원숭의 북주 법난과 관련한 언행을 재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위원숭에 대한 후대 불교사가들의 평가를 소개한 후 법난을 전후한 위원숭의 언행을 분석하여 실증적 관점에서 불교사가들이 그를 띠호하는 원인의 또 다른 측면을 찾아보았다.

목차

논문개요
Ⅰ. 서론
Ⅱ. 佛敎史家들의 衛元崇 평가
Ⅲ. 衛元崇과 北周의 法難
Ⅳ. 결론
〈참고문헌〉
[中文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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