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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문종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6집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319 - 34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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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중에 조선에 투항한 倭兵을 降倭라 칭하였다. 항왜의 발생배경은 식량의 부족, 과중한 노역과 혹독한 추위로 인한 병사들의 고통,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전쟁 기피 등이 조선의 항왜 우대책과 결부되어 있었다. 임진란 시기의 항왜는 1593년 5월경에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1594년 明軍의 철수를 계기로 조선이 적극적으로 항왜를 유치하면서 급증하였다. 그 후 明?日간의 강화교섭이 진행되면서 왜병의 투항이 주춤하였으나, 丁酉再亂이 일어나면서 다시 증가하였다. 한편, 임진란 시기 항왜의 수는 최대 1만명에서 최소 1천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明軍에 투항한 항왜는 遼東으로 압송되었으며, 이러한 前例에 따라 조선군에 투항해 온 항왜도 요동으로 압송하였다. 그러나 명의 주력부대가 철수하면서 항왜를 요동으로 보내지 않고 경상도 내륙지방에 分置하였다. 그 후 각 지방의 식량문제와 분란의 발생을 우려하여 항왜를 함경도?황해도?강원도?충청도 등지의 군현이나 섬으로 이송하고 거주지 밖으로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한편 조선에서는 항왜 중에서 총검의 제조나 화약의 제조법, 그리고 검술이 뛰어난 자에게 官職을 제수하여 서울에 거주하게 하고, 그 나머지는 내륙지방 또는 兩界地方에 移置하였다. 그러나 양계지방에서는 항왜의 수가 많아지자 지방 재정의 부족을 우려하여 항왜의 入送을 기피하였다.
임진란 시기의 항왜는 일본군과의 싸움에 참여하는 한편 胡狄을 방어하는데도 활용되었다. 또한 이들은 조총의 제조와 사용법, 화약의 제조법 등의 기술을 조선에 전수해주었다. 이는 조선의 무기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나아가 임진란을 종식시키는데도 일조하였다. 임진란 시기의 항왜 중에는 조선의 관직을 제수받은 수직왜인이 있었다. 그 중에는 조선으로부터 성과 이름을 하사받은 자도 있었으며, 임진란이 끝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수직왜인이 되어 조선에 도항한 자들도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倭兵의 투항 배경과 투항 시기
3. 降倭의 誘致와 처리
4. 降倭의 활용 및 역할
5. 조선의 관직을 제수받은 降倭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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