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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봉준 (경희대)
저널정보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한국시학연구 제37호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37 - 59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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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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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후반기 시사에서 ‘국민시’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최근까지 ‘국민시’는 잡지『국민문학』의 ‘국민문학’ 담론과 연동되어 연구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시’와 ‘국민문학’ 담론이 마치 40년대의 독창적인 산물처럼 오인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매우 다르다. 이에
본 논문은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식민지 시대의 문학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양분하고, ‘국민시/국민문학’을 후반기 문학의 이념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 이 논문은 『국민시가』(1941)에서『국민문학』(1941)을 거쳐『국민시인』(1945)으로 이어지는 문학에서의 ‘국민’ 담론에 주목했다. 특히 이 논문은 ‘국민시’를 국민문학 이념의 시적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흔히 일제 후반기의 국민시/국민문학은 천황제 파시즘을 미화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찬양한 친일문학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선인들을 신민으로 완전히 동화시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문학이 사용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의심할 수는 없지만, 실제 이 시기 ‘국민시’ 논의는 파시즘과 전쟁을 옹호하는 내용적?이념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즉 ‘국민시’는 단순히 일본의 지배를 찬양하는 친일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기 일본에서 시작된 ‘국민시’ 논의는 내용만큼이나 형식,즉 일본적?동양적 형식을 강조했고, 이러한 전통 미학을 통해서 일본과 조선에 유입된 서구 근대시의 전통을 극복하려는 탈서구·근대초극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국민시의 형식적 특징이 중요한 까닭은 서구 근대시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 미학의 복권이 집단적으로 시도된 것이 1930년대 후반의 문학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논문에서 살피지는 못했지만 일제 후반기의 ‘국민시’ 논의는 이처럼 30년대 말-40년대 초 조선에서 유행했던 향토적 경향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일제 후반기 문학과 시기 구분의 문제
Ⅱ. 국민문학, 고쿠민분가쿠의 조선적 형식
Ⅲ. 문학 이념으로서의 국민시, 주체로서의 국민
Ⅳ. 국민시의 시형(詩形)과 예술성
Ⅴ. 1930년대 후반 담론의 지형과 국민시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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