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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문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9집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69 - 10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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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동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본 연구는 바다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 기후변동(天)은 해양환경의 변화(海)를 초래하고, 이것은 인류의 역사(人)에 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것을 ‘천 · 해 · 인(天·海·人)’의 관점에서 확인하려 했다.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이 동아시아 ‘청어’의 역사였다.
오늘날 거의 사라진 청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였다. 청어는 ‘어느 때’부터인지 중국과 일본의 바다에도 대량으로 나타나 왕성한 청어어업을 일으켰다. 이러한 배경에는 ‘소빙기’라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에서 사용했던 ‘靑魚’라는 명칭이 중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는 16세기 후반 이전에는 바다청어(herring)를 가리키는 말이 없었다. 그 이전에는 청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민물의 ‘靑魚’와 구분하기 위해 ‘海靑魚’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것이 조선의 바다로부터 왔다고 하여 ‘新魚’, ‘朝鮮魚’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청어어업이 시작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청어에 대한 정보를 조선으로부터 받아들인 일본은 청어를 ‘高麗?’이라고도 했다. 또한 청어를 의미하는 ‘?’와 ‘?’이라는 한자가 있었지만, 18세기부터는 조선에서 사용하던 ‘靑魚’라는 한자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실제 조선의 기록은 16세기 후반부터 청어가 대량으로 중국의 바다로 이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방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어가 ‘너무 흔하여 물리게 먹을 지경’이었고, ‘靑魚粥’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다. 일본도 북해도 진출과 더불어 청어어업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北前船교역을 통해 魚肥로까지 널리 유통되면서 농업혁신과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동했다. 17세기 이후, 동아시아 3국의 청어어업의 발전은 ‘소빙기’의 혜택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천 · 해 · 인(天·海·人)’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가 대단히 유용함을 증명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천 · 해 · 인의 관점으로
Ⅱ. 청어라는 물고기: 청어의 박물학
Ⅲ. 소빙기와 조선청어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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