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태용 (이화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3호
발행연도
2013.11
수록면
203 - 229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백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적이 장구하게 번성하는 현실은 18세기 후반 조선 지배층 일각의 인물들로 하여금 청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품게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홍대용과 박지원은 청나라의 중국 장악 과정이 공명정대하였기에 유감이 없을 뿐 아니라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 천하의 백성을 구해내려 하였기에 하늘과 백성의 마음이 한결같이 귀순하였다는 한인 지식인들의 인식을 연행 과정에서 직접 접하게 되었다. 이런 한인들의 인식은 홍대용과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인들에게 꽤 중요한 시사를 주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중국 장악이 직접적 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약화되는 동시에, 스스로 멸망한 명나라 대신에 청나라가 중국에서 장구하게 번성을 누리고 있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 위에서 이적인 청나라와 중국의 문물을 분리한 후에 청나라가 중국의 문물을 빼앗아 가지고 있기에 장구하게 번성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도출해내었다. 이렇게 되면 청나라가 빼앗아 가지고 있는 문물은 예부터 전해지던 중국의 문물이기 때문에 조선이 그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박제가에서는 청나라가 중국문물의 실질을 빼앗아 가지고 웅거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문물과 청나라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면서 이적과 중국문물의 구분은 결과적으로 모호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논리적으로만 보면 이적인 청나라가 중국이 되었다는 정반대의 해석도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아직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게서는 이적이 중국이 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약용 단계에서는 이미 명청교체 시점부터 중화적 가치를 보유한 존재로서 이해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에 까지 이르면 청나라 치하 한인들이 청나라의 중국 장악을 이해하는 방식과 거의 흡사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북학을 하는 데 논리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이제 이들에게서는 없는 것일뿐 아니라 나아가면 명청교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해석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이적이 되어버린 중국
3. 중국이 될 수 있는 이적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300-001005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