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광연 (동국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0호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87 - 121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後高句麗(901~918)의 왕 弓裔가 彌勒佛을 표방하게 된 배경으로 선행 연구에서는 신라 하대의 일반민들 사이에 眞表에 의해 보급된 미륵하생신앙이 말법 의식과 더불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여 왔는데, 이 글에서는 그 배경을 몇 가지 추가하였다.
첫째, 9세기 후반 신라 왕실의 미륵신앙이다. 景文王의 누이인 단의장 옹주가 선종 승려를 미륵불로 높였는데, 여기에는 왕을 轉輪聖王에 비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둘째, 9세기 후반 선종 승려들의 미륵신앙이다. 신라의 선종에는, 唐의 선종과 달리, 迦葉이 鷄足山에서 미륵의 하생을 기다린다는 傳衣說에 근거한 미륵신앙이 있었다. 궁예의 미륵불 표방에 선종 승려들이 적극 협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황제이면서 전륜성왕이자 미륵불을 자처하였던 武則天이 또 하나의 배경이다. 궁예는,『大雲經』, 『寶雨經』등 僞徑을 적극 활용하여 권력을 확보하였던 武則天처럼, 스스로 20여 권의 經을 지었다.
궁예가 미륵불을 표방한 것은 9세기 후반 신라 왕실 및 승려들의 미륵신앙 맥락과 동아시아 ‘王卽佛’ 전통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륵불임을 자처하였던 시기가 1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왕즉불’의 전통이 재현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중국의 ‘왕즉불’ 관념의 전개
Ⅱ. 후고구려(태봉) 왕 궁예와 미륵불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910-001431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