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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2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157 - 204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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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세력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자, 어린 임금 단종의 즉위 이후 반란이 계속되는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거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집권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그들의 주장은 세조가 단종의 선위를 받아 즉위하게 되면서 논리적 근거가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집권 이후 권력을 공고히 구축한 세조 정권의 주장에 대해 누구든 공공연히 반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조 정권의 불법적인 권력 침탈은 끝내 역사적 심판을 받았다. 숙종 때 단종이 왕조의 정통으로 복권되었고, 단종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충신으로 추숭되었다. 2백년이 지난 뒤 이러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역사를 거슬러 세조의 집권을 비판하는 대항 기억이 형성되어 전승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난언과 은거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사건을 통해, 성종 및 연산군 때에 세조 정권에 대항하는 기억이 형성되는 계기를 파악하였다. 세조 즉위 이후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난언으로 처벌받았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세조의 집권을 부당하다고 여기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증거이다. 집권 세조 세력을 비판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종 때의 사관들에게도 전해졌는데, 사초에 실린 이러한 이야기가 바로 무오사화의 발생 원인이었다.
또한 세조 정권에 반발하여 관직을 포기하고 은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은거 이유를 숨겼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을 드러내어 추숭해야 한다는 주장은 숙종대 이후에나 등장하였다. 하지만 김시습과 남효온을 비롯한 은거지사들은 김종직 문인 집단과 교분이 깊었다. 세조 집권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은거지사들의 기억은 성종대 이후 새롭게 정치에 참여한 김종직의 문인 집단에게 전승되었는데,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는 정권을 옹호하는 기성의 역사와 대항 기억의 충돌이 빗어낸 비극적 사건이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亂言의 성행
Ⅱ. 隱居之士와 감추어진 절의
Ⅲ. 金宗直 門人 집단과 대항 기억의 형성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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