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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기석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건국대학교 스토리앤이미지텔링연구소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스토리&이미지텔링 제1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115 - 14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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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전 제주 땅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극인 제주민란은 제주도라는 작은 섬에서 일어난 단순한 민란이 아니다. 19세 말 조선의 쇄국정책이 붕괴되면서 서양세력이 들어오고, 이에 발맞춰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천주교가 들어오게 된다. 저물어가는 국운이었던 조선에서 프랑스를 업고 들어온 천주교 세력은 조선 민중의 삶 속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게 된다. 이때 구마실 신부를 중심으로 제주에 들어온 천주교는 사실상 치외법권적 권한 행사를 하면서 기존의 제주의 전통과 풍습과 충돌하게 된다. 특히 중앙정부에서 내려온 봉세관이 천주교 세력과 결탁함에 따라 이에 대한 토착 대항세력으로 상무사가 조직되어 갈등이 심화된다. 급기야 천주교 쪽에서는 제주 민중에 대해 발포까지 하게 되고, 이에 대한 민중들의 천주교인 학살참극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새로이 전개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이 제주민란은 제주와 서양이라는 두 문화의 충돌이며, 혹은 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제주의 토속 신앙과 천주교라는 외래 종교 간의 충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당시 천주교인들의 제주 민중들에 대한 인식은 종교적 관점에서 ‘사탄의 무리’ 정도로 심히 왜곡되어 있었다. 이러한 충돌은 새로 유입된 신흥 종교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역사와 토착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당을 일방적으로 타파하려는 데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천주교, 더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교가 힘을 과시하며 선교해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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