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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충기 (국립김해박물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3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499 - 53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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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三國史記》 열전 , 기도조에 기록된 우시산국의 위치를 비정하고, 그것의 형성배경과 발전과정 및 주변세력과의 관계 등을 살펴보았다. 우시산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었으나 관련문헌과 고고학자료로 보았을 때 울산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우시산국은 울산지역의 특징적인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이후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더욱 발전한다. 진한의 일국으로서 인근의 사로국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한 우시산국의 국읍은 문헌기록상의 干火로서 그 위치는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과 양산시 웅상읍 일대로 추정된다. 특히 웅촌면 대대리 하대고분군에서는 다수의 대형목곽묘에서 많은 위세품이 출토되이 우시산국 지배집단의 묘역임올 짐작케 한다.
한편 선진문물을 소유한 유이민집단을 이끌던 탈해는 처음 금관국에 도착하여 수로왕과 세력다툼을 벌이지만 패배해 무리를 이끌고 북상한다. 탈해집단은 수로왕과의 대결과정에서 주변 재지세력인 가도와 연합하였으며, 이러한 기도를 앞세워 북상하는 과정에서 인근의 거칠산국과 우시산국을 공격하고 경주 동남방면 일대에 자리 잡은 후 사로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이후 탈해가 사로국의 왕이 되면서 우시산국은 자연스럽게 사로국의 정치적 영향아래에 놓이게 된다.
3세기 전반경에는 사로국이 울산지역의 대부분을 영역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시기부터는 우시산국의 국읍인 干火보다는 굴아화촌이 부각된다. 굴아화촌은 본래 우시산국에 속해있던 읍락으토 추정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리적 위치 등의 이유로 사로국의 울산지역 지배의 거점으로 중요시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운동유적의 고분군은 이리한 굴아화촌 지배층의 묘역으로 6세기 말까지 신라중앙의 영향을 받은 고분이 꾸준히 축조되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우시산국의 형성배경
Ⅲ. 우시산국의 성장과 중심지
Ⅳ. 탈해집단의 이동과 屈阿火村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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