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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천명희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9 - 3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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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月印釋譜』는 수양대군이 1447년 7월에 완성한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이를 보고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편집하여 1459년(세조 5)에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다. 현재 전체 25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월인석보』는 초간본과 중간본을 모두 합쳐 26권의 내용만이 영본零本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3년 11월 21일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 지장전地藏殿의 인왕상仁王像과 시왕상十王像의 복장腹藏에서 다량의 고서와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1692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중에는 한글 창제 직후의 표기법을 반영하는 보물급 한글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광흥사에서 다수의 한글 자료가 발견된 것은, 이 사찰이 이들 자료의 저자 및 간행에 참여하였던 조선시대 초기 학승學僧 신미信眉 및 학조學祖와 각별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승려는 세종부터 세조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왕실의 신뢰를 받았으며, 특히 학조가 안동 출신으로 학가산鶴駕山에서 출가한 것을 계기로 이후 광흥사와 각별한 관계를 지속하였다고 한다. 광흥사는 조선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그 규모가 대단하였고, 여러 중요 문헌들의 간행 기록으로 미루어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의 원소장처로도 추정되고 있다.
『월인석보』는 권7ㆍ권8ㆍ권21(2종) 등 총 4책에 해당하는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특히 권21의 경우 아직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내용과 1542년에 제작된 중간본의 2종이 함께 발견되었다.
『월인석보』 권21은 5개의 조각상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간기刊記는 없으며 전체 222장 가운데 1~6ㆍ214~219장이 사라졌으나, 남아있는 부분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형태는 다른 권들의 초간본 형식과 일치한다. 한자음의 표기에 있어 『동국정운東國正韻』에 따른 한자음이 매우 엄격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방점傍點도 중간본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월인석보』권21의 중간본은 모두 4종이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초간본 추정 자료의 경우 광흥사에서 만들어진 중간본(1542년)의 저본底本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전반적인 글자의 모양과, 종성의 표기 형태를 통해 드러난다. 즉 1542년 광흥사 중간본을 제작할 때 본서가 판하본板下本이 되었고, 목판에 홈을 파내어 수정하는 매목埋木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요약문
1. 서언
2. 월인석보의 편찬 과정과 특징
3. 광흥사『월인석보』권21
4.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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