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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정 (용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8號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351 - 382 (32page)
DOI
10.14769/jkaahe.2014.08.28.351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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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2세기 이후에 청자의 문양 소재가 다양해지고 독창적인 도상이 나타나는 배경을 당시 고려 문인 사회의 성격과 관련하여 보았다. 고려 12세기 전반은 예종(1105~1122)과 인종연간(1122~1146)에 이르러 문학적 역량이 성숙되고, 북송 휘종제와의 긴밀한 관계로 인한 송대 서화의 대량 유입 등이 이루어졌다. 12세기 시부(詩賦)의 유행과 도교적 성향, 북송대 그림이라는 이 세 가지 요인이 고려 왕실과 문인 사회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영향력이 지속되면서 그들이 향유하던 청자의 문양 소재나 도상 등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문양 소재에서 요황(姚黃), 일념홍(一捻紅), 황촉규(黃蜀葵), 현학(玄鶴) 등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왕의 덕과 위용을 상징하는 ‘상서(祥瑞)’의 시제(詩題)로 이용되었고, 동시에 청자의 문양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당시 고려내에서 청자의 위상이 높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12세기 이후에 『시경』이 널리 교육되고 읽히면서 훤초문, 물가의 대나무, 부예(鳧?), 버드나무, 갈대와 같은 시경시의 제재나 내용이 청자 문양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매병에 표현된 ‘운학문’이나 ‘송하탄금문(松下彈琴文)’은 고려 왕실과 문인들의 도교적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도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문양들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표징(表徵)’으로서 기능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맞게 변형되거나 창조되면서 독창적인 도상으로 재창조되었다.
청자 문양은 여러 경우를 볼 때 그림과 관련성이 많으며, 이러한 경향은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회화적인 문양이 주로 보이는 시기는 12세기경에 집중되며, 이는 당시 북송 황실 서화의 대량 유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16년에 송에 사신으로 갔던 김부식이 실견한 휘종의 친필(親筆) 그림인 <균장종학도(筠莊縱鶴圖)>와 <당십팔학사도(唐十八學士圖)>에서 고려청자의 문양과 많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었다.
고려청자는 단순히 기능적인 그릇이 아니라 고려 문인(文人)들의 성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문인 문화의 일부였다. 청자 문양이 그림을 모본으로 하였다고 하더라도 고려 문인들의 성향이 반영되어 도상의 의미를 강조하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거나 일부 소재가 단독 문양으로 독립하는 등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청자 문양의 시 · 화적 요소의 성행 배경
Ⅲ. 청자 문양의 시 · 화적 요소와 의미
Ⅳ. 청자 문양의 화본 문제와 도상의 독창성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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