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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명호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1집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10 - 33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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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근대 명치정부의 동아시아 통치체제라는 큰 틀 속에서 이왕직의 설치배경과 기능, 특징 등을 검토하였다. 명치정부가 1872년에 유구를 식민지로 편입할때는 유구국왕을 藩王으로 임명하고 유구국왕의 외교권과 내치권을 박탈하기 위해 외무성 출장소와 내무성 출장소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반면 대만을 식민지로 또 관동주를 조차지로 편입할 때는 총독부를 핵심으로 하였다. 이처럼 유구에 대한 정책과 대만, 관동주에 대한 정책이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구는 독립 왕국이었음에 비해 대만과 관동주는 청나라의 지방 행정단위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관동도독부로 변경되기 이전의 관동총독부는 명칭, 조직, 기능 등에서 대만총독부와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는 대만총독부의 명칭, 조직, 기능 등이 관동총독부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는 관동총독부가 청일전쟁 중 요동에 설치되었던 占領地 總督府를 계승한 조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占領地 總督府의 명칭, 조직, 기능 등이 대만총독부에 그대로 적용되었고, 나아가 占領地 總督府의 명칭, 조직, 기능 등이 관동총독부에도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만총독부와 관동총독부는 본질적으로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군정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에 설치된 통감부는 기능 측면에서 유구 식민통치체제와 유사하였다. 형식적으로 볼 때, 통감부 시기의 고종황제는 황제권을 소유했지만 실제는 통감을 통해 외교권과 내치권을 박탈당하였다. 이런 점에서 통감부 시기의 대한제국 식민통치체제는 유구 식민통치체제와 유사했고 나아가 통감부 시기의 대한제국 식민통치체제는 유구 식민통치체제를 적용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통감부시기의 대한제국 식민통치체제는 유구 식민통치체제 때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으로는 고종황제를 인정함으로써 고종황제의 반발을 무마하고, 실제로는 통감을 통해 고종황제의 외교권과 내치권을 박탈함으로써 식민통치의 내실을 실현하기 위한 체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1910년에 조선총독부와 함께 설치된 이왕직은 그 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제도였다. 조선총독부는 대만총독부, 관동총독부와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군정기관이었음에 비해 이왕직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기관은 기관이지만 직접적인 선례가 찾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왕과 관련된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왕직은 유구 藩王제도와 유사하지만 존속기간이나 기능면에서 유구 藩王과 비교될 수 없다. 따라서 이왕직의 역사적 성격과 의미, 기능 등을 규명하고 나아가 명치천황 시기 일본식민지 통치체제의 성격과 특징 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왕직에 관련된 연구가 본격화 될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琉球 통치체제
Ⅲ. 臺灣과 關東州 통치체제
Ⅳ. 大韓帝國 통치체제와 李王職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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