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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추윤 (신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지적정보학회 한국지적정보학회지 한국지적정보학회지 제17권 제2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47 - 61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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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제도사를 주로 취급하고 있는 한국 지적사에 있어서, 양전 시 지적단위(地積單位)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계통적으로 다루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통일신라시대에 시행된 결부제(結負制)는 결부속파(結負束把)를 지적단위로 하는 우리나라의 특유의 단위제이다. 구한말 양전 개혁 시 독자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자 노력했지만 일제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경무제(頃畝制)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토지면적 단위에 경(頃)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널리 나타난다. 일본의 영집해(令集解)에 나타난 고구려의 단보제(段步制)는 1단 250보로, 중국의 240보와는 차이를 갖는 독창적 제도이다.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조선토지조사사업을 착수하기 전에는 두락제(斗落制)를, 착수 후에는 정단법(町段法)을 사용하였다. 정단법을 우리가 흔히 평정법(坪町法)이라고도 하는데, 현재도 ‘아파트 크기가 30평’이라고 하는 등 잔재가 남아있다. 1963년에 우리나라의 도량형 단위가 미터법으로 개혁되었지만, 실제로 건물과 토지는 1983년에 마지막으로 미터법이 사용되었으며, 지적단위는 유도단위로 ㎡를 사용하게 되었다.

목차

요지
Abstract
1. 서론
2. 고대의 양전시 지적단위
3. 일제시대의 양전시 지적단위
4. 현대의 양전시 지적단위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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