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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오중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49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243 - 28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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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 한반도 중부 이북에 살았던 주민의 대개가 濊貊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예맥의 분포는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만주에까지 미친다. 고대 漢 王朝는 만주의 중남부 지역에 요동군을 설치하였다. 요동군은 황제의 직할 통치를 위한 행정단위였는데, 그 주민의 상당수는 예맥이었다. 요동군에 편입된 예맥, 즉 ‘요동예맥’은 郡民으로 재편되었을 터인데, 이 글은 이들 요동예맥의 자취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요동예맥 가운데 요동 북부에서 생활하였던 예맥은 군현 체제에서도 부족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첫째는 前漢 왕조가 실시한 部都尉 제도(Sub-Commandery System) 때문이었다. 이 제도는 원주민이 지녀온 종족의 관습과 기율을 유지시키는 제도로서, 이로 인해 요동예맥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었다. 둘째는 부도위제와 관련하여 원주민이 유지해 온 집단의 생활방식으로, 이로 인해 요동예맥은 부족의 집단행동을 펼칠 수 있었다.
후한에 이르러 부도위가 폐지되었지만 요동예맥의 존재는 확인이 가능하다. 정사의 東夷傳에서는 이들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後漢書』安帝紀 등을 보면 요동예맥의 군사행동을 확인할 수 있다. 요동예맥은 고구려나 鮮卑 등과 연합하여 요동군이나 현도군을 공격하였다. 3세기의 요동예맥은 요동에 등장한 공손씨세력에 복종하였지만, 공손씨세력이 약회된 이후엔 오히려 中原王朝의 편을 들어 공손씨를 공격하는 데 협력하기도 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四史’에서의 예맥
Ⅲ. 『후한서』 安帝紀의 ‘예맥’
Ⅳ. 3세기의 ‘요동예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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