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디자인문화학회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제19권 제3호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791 - 802 (1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조선시대 초상화에 그려진 족좌대에 관한 연구이다. 공신이나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교의나 의자에 앉아 발을 얹고 있는 초상화에 족좌대는 거의 필수적이었지만 현존 유물이 없는 실정이다. 조선 초기 초상화는 고려 말을 계승하였고, 족좌대도 마찬가지다. 1453년경의 <신숙주 초상>은 고려 양식을 이어 조선의 족좌대 양식을 보여주는 최초의 초상화이다. 이 양식은 공신상 족좌대의 모범으로 1712년 연잉군 초상까지 이어졌다. 공신상의 족좌대 양식은 정면과 측면의 머름칸 구조와 구름형태로 정교하게 조각된 다리이다. 머름칸 안에는 <손소 초상>부터는 4가지 도형들이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중국 초상화의 팔자형 혜나 호피깔린 의자, 자연스러운 나무결을 좋아했다. 17세기부터 청(淸) 말기까지 지속된 정면관은 잠시 조선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8~9분면의 조선 초상화 양식으로 돌아선다. 중기에는 중국풍의 영향을 <김석주 초상>에서 보듯 천판 위나 아래에 호피나 표피머리가 있고 정면은 다리가 없이 기하학적 안상문(眼狀紋) 형태로 오려낸 족좌대가 선호된다. 천판에는 18세기 중반까지 청색이나 녹색테를 두른 민돗자리가 깔리기도 하지만, 18세기 초부터 화문석이 깔리기 시작해 조선 말기에는 화문석이 거의 놓여진다. 후반기에는 족좌대 형태도 낮은 다리굽이거나 없는 형태에, 전면은 길상문, 불교적 보상화문 등이 조각되며, 목재의 색은 중후한 느낌을 주는 짙은 자단같은 목재의 색감이 선호되고, 19세기 말 <이하응 초상>에는 다시 머름칸 구조 양식에 장석으로 감싸주는 형식이 등장한다. 족좌대는 중국이나 일본 초상화에도 있지만, 고구려 벽화에는 보이지 않는다. 족좌대는 송(宋)의 발받침 양식과 원(元)의 교의 습속이 어우러지면서 발전된 양식으로 생각된다. 조선 초상화에서 족좌대는 공간의 허(虛)를 채워주었고, 보여지는 나를 중시하던 조선의 유교적 문화에서 품격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조선 특유의 초상화가 창조한 양식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