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炳熙 (한국교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4號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57 - 102 (4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양질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였다. 노천수 · 지표수를 식수로 삼는 일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중단되었고, 대체로 지하수를 식수로 확보하였다. 산이 많아 지하수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지하수를 일찍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지하수를 활용하는 경우, 처음에는 지표에 흘러나오는 샘[泉]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점차 땅속으로 우물을 파서 그 물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고려시기 식수가 매우 중요해서 사원을 세울 때, 성을 축조할 때, 전쟁 시 피난처를 선정할 때 그것의 확보는 일차적인 고려사항이었다. 민간에서도 집을 지을 때, 마을을 건설할 때, 정자를 조성할 때, 그리고 궁궐을 조성할 때도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고려시기 지하수를 확보하는 방법은 샘과 우물의 두 종류가 있었다. 샘이 자연스럽게 분출하기 위해서는 지하수를 떠받치는 암반이 있어야 하며, 지하수의 흐름을 막아 한 곳으로 흐르도록 하는 바위가 있어야 했다. 샘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으로 넓은 水脈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氣象의 변화에 관계없이 流量의 변화가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우물은 지하를 파 들어가 인위적으로 조영하고 두레박을 사용해 물을 긷는 것이었다. 샘물이나 우물물은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나 때로는 특정 세력가가 독점해 문제되는 수도 없지 않았다.
山城의 경우에는 위치한 곳의 지형적 특성상 샘이 훨씬 우세하였고, 반면 고려말 이후 많이 조영되는 邑城의 경우에는 우물이 훨씬 우세하였다. 고려시기 읍치를 중심으로 한 중요 촌락은 산록경사면에 자리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샘이 매우 중요한 식수원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이후 거주공간이 확산됨에 따라 우물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목차

요약
Ⅰ. 서언
Ⅱ. 식수의 중요성
Ⅲ. 식수의 원천인 泉과 井
Ⅳ. 泉과 井의 이용
Ⅴ. 泉 중심에서 井의 확대로
Ⅵ.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