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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범수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66집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309 - 34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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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사(鏡神社)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현존하는 고려 최대의 불화로서 주목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의 총비(寵妃)였던 숙비(淑妃) 김씨(金氏)가 발원하여 1310년에 제작된 고려 왕실불화의 대표작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검토해 본 결과 그 쟁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었다.
① 경신사 수월관음도의 발원자는 ‘왕의 숙비(淑妃)’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② 제작자의 경우, 화사(畵師) 내반종사 김우(金祐)를 비롯하여 문한서(文翰署)의 화직(畵直)으로 대조(待詔) 이계(李桂)와 임순(林順)⋅송련(宋蓮) 등 총 8명이 가담하였다.
③ 조성 배경에 대해서는 당시 가장 활발한 불사가 이루어진 민천사(旻天寺)를 주목해 보았다.
④ 마지막으로 수월관음도가 일본으로 건너간 내력에는 1350년 이후 왜구로부터의 약탈이 가장 유력하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1357년에 송포당(松浦黨)을 비롯한 왜적이 승천부(昇天府)의 흥천사(興天寺)에 쳐들어와 충선왕과 한국공주(韓國公主)의 영정을 가지고 갈 때 함께 건너갔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본고에서는 고려시대 원당이 시기별로 성쇠를 거치며 원당의 주인 역시 바뀐다는 점에 착안하여 왕실원당의 이동에 따라 수월관음도 역시 함께 흥천사로 이동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해보았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경신사 수월관음도의 내용
Ⅲ. 경신사 수월관음도의 연구 동향과 쟁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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