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호남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인문사회예술융합학회 문화와융합 문화와융합 제37권 제2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157 - 180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조선 문인들이 서역과 서역인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대해 고찰해 본 결과이다. 조선문인들의 서역인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西域의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서인 실록과 문집 등을 살펴 본 결과 西域이란 말은 보통 2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 佛敎의 발상지로서의 西域, 두 번째, 중국 너머 서쪽 지역의 통칭이다. 불교의 발상지로서 서역을 언급할 때는 부정적인 인식을 띠지만, 중국 너머 서쪽 지역을 통칭할 땐,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지리적인 요인 탓에, 조선문인들은 직접 경험보다는 간접 경험으로 서역과 서역인을 경험하였다. 이는 조선 문인의 서역관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필터를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인들은 서역의 지리적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태종대에 제작된 지도에서도 그 흔적이 드러난다. 그러나 지리적인 정보를 파악한다고 해도 상대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법은 뿌리 깊은 중화중심주의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문명을 가진 상대로서 서역을 바라보고 인정하였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 인식변화의 주요원인 중 하나는 세계지도의 전래이다. 선교사들이 주로 유포한 세계지도는 중화중심주의를 해소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서양의 과학적 지도가 전래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중화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서역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유지되었다. 이후 직간접 접촉으로 인해 전해진 서양 문물은 조선 문인들에게 서역을 개명하고 신비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였다. 특이한 점은 천주교를 박해한 조선에서, 중국에 파견된 서양의 선교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마테오리치(중국명: 利瑪竇)와 로드리게즈(중국명: 陸若漢), 줄리오 알레니(중국명: 艾儒略) 등 선교사 일행은 우리나라의 기록에서도 긍정적인 표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마테오리치 등이 서양의 앞선 과학기술을 선교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한 결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유학을 부정하거나 유학의 이념과 맞지 않는 부분은 배격하는 면모도 여전히 이어졌다.

목차

1. 서론
2. 불교의 발상지로서의 서역
3. 중국너머 서쪽으로서의 서역
4. 지도를 통해 본 조선인들의 서역인식 변화
5. 결론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710-00250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