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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대재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5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7 - 49 (43page)
DOI
10.21490/jskh.2016.1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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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 전승이 중국 전한~삼국 시기에 성립되는 과정은, 漢의 朝鮮4郡설치 및 낙랑지역 호족들의 기자 선조의식을 계기로 전개되었다. 고구려는 낙랑군을 점령한 이후 그 지역의 箕子神을 제사하였다. 이것은 기자조선 전승이 고구려에 수용된 것을 의미하며, 이를 계기로 고구려는 箕子國(朝鮮)의 후신으로 인식되었다. 8세기에 들어 唐은 신라를 동방의 君子國으로 인식하였는데, 9세기 이후 崔致遠등의 신라 지식인들은 신라를 군자국으로 자부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군자국 의식은 기자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실적 소중화 의식이라기보다는 발해에 대한 경계심‧적대감과 함께 신라의 말세적 현실에 대한 좌절감의 역설적・복고적 표출에 가깝다고 이해된다. 11세기 고려에서 나타난 기자 계승 의식과 소중화 의식이 12세기 초 箕子祠제사를 통해 제도화되고, 『三國史記』를 통해 기자조선이 삼국시대 이전의 중심 시대로 설정되었다. 기자조선이 국사에서 고조선사의 중간 단계로 체계화된 것은, 13세기 후반 李承休의 『帝王韻紀』에 이르러서였다. 『제왕운기』에서는 前朝鮮(단군)과 後朝鮮(기자)의 체계를 세우면서, 기자조선을 소중화의 표상으로 제시하였다. 고려 중~후기에 기자조선이 국사화되는 과정은 고려와 宋・거란(遼)・여진(金)・몽골(元) 사이의 다원적 국제관계 속에서 등장한 소중화 의식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箕子朝鮮전승의 성립 과정
3. 箕子朝鮮전승의 수용과 君子國의식
4. 箕子朝鮮의 國史化와 小中華의식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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